한동훈, 선거 넘어 정치판 세대교체를

      2023.12.27 19:15   수정 : 2023.12.27 19:15기사원문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행보는 의외의 연속이다.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하면 길이 되는 거죠." 정치 경험이 없다는 우려에 대한 답으로 비대위원장 수락 의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루쉰(魯迅)의 말로 답을 내놓은 것이다. 기존의 정치 문법으로는 '고심 중'이라는 메시지를 낼 타이밍이었다.
비대위원장 수락도 마찬가지. 현직 장관 신분을 감안하면 '삼고초려' 모양새가 고전(古典)적이다. 윤재옥 원내대표와 한번 만난 후 수락 의사를 밝힌 것은 역시 낯설다. 장관 퇴임 후의 메시지는 영화 '링컨'의 대사를 연상케 한다. "국민의 상식과 국민의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갖고 앞장서려 한다." '73년생 한동훈'(새빛)의 표현대로 신개념·신세대 정치인의 탄생이다.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도 비서가 써준 영혼 없는 글 대신 자기만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열 차례 언급한 '동료시민'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온다. 서구에서는 관습처럼 "동료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s)"이란 말로 연설을 시작한다. '국민 여러분'은 통치자가 통치의 대상인 국민들을 부르는 것이다. 반면 '동료시민'은 화자와 청자 모두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 시민구성원으로 보는 화법이다. 민주주의 정치의 최고 덕목은 우리 모두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갖는 동료시민임을 자각하는 데 있다.

운동권 권위주의, 개딸 전체주의 정치 청산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 경력만으로 수십년간 군림해 온 정치는 사라져야 할 잔재이다. 여전히 자신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국민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운동권의 인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한 위원장은 운동권 정치 청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정치를 만드는 경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을 넘어 정치판 전체의 세대교체를 만들어 낼 때 한 위원장의 존재 의미가 극대화될 수 있다. 일차원적 투쟁 대신 여야가 저출산, 기후위기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고 누가 왜 이겨야 하는지 시민들이 판단하게 하는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사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하는 도구로서 정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불출마라는 희생 카드는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진다.

우려도 있다. 취임 연설에서마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것이다.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고 넘길 수도 있지만 정치인 한동훈이 달라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헨리 키신저는 젊은 시절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것과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검사 한동훈은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는 길만을 걸어도 '조선제일검'이 될 수 있었다. 정치인 한동훈은 주관적 정의와 객관적 가능성을 조화시키는 역량을 보여야 한다. 여의도 사투리는 물론 서초동 문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카플란의 현명한 정치가'(미지북스)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 선택은 너무도 쉽다. 중대한 결정은 본질적으로 아슬아슬한 면모를 가지며, 대개 두 가지 선 또는 두 가지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정의와 불의, 흑과 백으로 가르기 어려운 회색지대에서 선택을 해야 할 한 위원장이 새겼으면 하는 말이다.

한동훈 비대위가 마냥 순항할 리는 없다. 실수도, 걸림돌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링컨은 이렇게 말한다. "나침반은 진북(眞北·True North)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길에 있는 늪지대와 사막과 진흙탕은 말해주지 않는다." 나침반의 진북이 가리키는 이상을 아는 것과 현실 정치에서 이를 실현해 내는 역량은 차원이 다르다.
진흙과 늪지대와 사막을 건너야만 아름다운 북극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 한동훈이 진흙탕과 늪지대에 빠지지 않고 정치권 세대교체라는 북극성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영이 아니라 우리 동료시민들을 위해서 말이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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