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기술 확보의 꿈, 세계 속에 위상 높아진 IVI로 실현됐죠"
2024.01.08 09:18
수정 : 2024.01.08 09:1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우리나라의 생명과학 기술 수준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백신 기술 발전에 한 몫하는 국제기구로 성장했다."
박상철 IVI 한국후원회 회장( 사진)은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소재 IVI 사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후원회는 IVI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데 기여하는 한편,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저개발 국가에 꼭 필요한 백신을 지속적으로 보급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국제기구로 우뚝 선 IVI의 산증인이다. IVI를 한국에 유치하는 과정, 한국에 IVI를 설립한 이후 국제기구로서 사업·활동이 본 궤도 위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 예산을 확보하고 기금을 모으는 활동 등 모든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6월에는 후원회장을 연임, 오는 2026년까지 IVI를 지원하는 역할을 지속하게 됐다.
韓 생명과학 키우겠다는 욕심에 IVI 합류
지난 1994년 한국에 IVI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시기에 박 회장은 모교인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IVI의 한국 유치를 위해 뛰던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과 신승일 전 서울대 교수 등 선배 학자들의 권유로 IVI와 연을 맺게 됐다. 조 전 총장과 신 전 교수는 현재도 IVI 한국후원회에서 상임고문과 고문을 맡고 있다.
박 회장은 의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학자로 백신을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IVI 참여 당시에도 한국에 백신 등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질환을 예방하고, 질환에 생기더라도 중증도를 낮출 수 있는 백신은 예방적 측면에서 중요성과 가치가 점점 증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 회장은 "처음에는 백신을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저개발 국가에 공급한다는 IVI의 설립 취지에 공감했다기 보다는 불모지였던 한국의 생명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며 "당시 한국이 만들 수 있는 백신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기구를 유치하면 기술 개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IVI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로 출발해 올해 설립 27주년을 맞이했다. 설립 초기 어려움 속에서도 후원회의 활동은 현재 IVI가 성과를 낼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됐다.
IVI는 세계 최초의 저렴한 경구 콜레라 백신을 개발해 중저소득 국가의 제조사들에 기술을 이전했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제 승인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개 국가 7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시행해 그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공을 세웠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거치며 백신의 중요성이 한껏 높아졌고, IVI의 역할과 인지도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IVI의 각종 목적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돕는 후원회의 입장에서도 IVI의 높아진 위상은 활동 전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 회장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IVI가 진정한 의미의 국제기구로 도약했다"며 "특히 백신의 효과 유무를 검증하는데 쓰이는 '표준혈청'을 백신 개발 글로벌 빅 파마, 연구기관 등에 제공하며 백신의 국제적 표준화를 이끄는 글로벌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엔 기구로써 백신에 대한 연구개발(R&D)를 하는 곳은 IVI가 유일하고, 지금도 IVI는 백신을 개발하는 전 세계 여러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및 단체들을 연계해 기술적 고도화를 돕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저개발국에 공급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필수적인 백신 개발도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 '스카이코비원'의 개발 과정에서 IVI는 글로벌 임상 수행 및 임상분석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 프로젝트의 성공을 도왔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IVI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큰 행운이라고 박 회장은 말했다.
그는 "후원회는 IVI를 위해 각종 대관 업무는 물론 후원회 활동을 통해 펀딩을 하는 것이 주요 역할인데, 과거에는 모금이 참 어려웠다"며 "IVI의 인지도가 낮았고, 저개발국을 위한 백신 개발·보급 사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낮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예산이 과거에 비해 3배 이상 커졌고 IVI에 후원을 하는 기업과 독지가들도 늘었다"며 "어려운 시절에는 후원회 기금 중 일부를 떼어 R&D 자금으로 썼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백신을 구매해 저개발국에서 백신을 보급하는데 더 많은 자원을 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사정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려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 20억원이 넘었던 후원회 모금이 코로나19에서 일상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는 20억원 밑으로 내려갔다.
그는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잠비아 같은 국가에서 백신 보급 사업을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해줘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20만도즈 이상 백신을 구매해야 하고 접종 인력의 인건비, 접종시설의 운영비 지출, 심지어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 전기를 끌어오고, 의료용 냉장고까지 마련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올해 펀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IVI가 인류에 기여하고 한국의 과학과 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계속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유럽지역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IVI의 사무소가 생겼다.
그는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지만 여러 나라에서 분소가 개소되고, 해당 지역에서 백신과 백신 보급의 중요성이 알려져 후원회 활동이 시작된다면 IVI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비용 장수사회"가 바람직
박 회장은 IVI의 설립과 발전, 어제와 오늘의 주역이지만 본래는 인간 노화 문제를 30년 넘게 진지하게 연구해온 석학으로 의학계 권위자기도 하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지 오래고 초고령사회가 턱 밑까지 온 상황에서 박 회장은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로 '저비용 장수사회'를 제시했다.
저비용 장수사회는 △자강 △자립 △공생이 키워드다. 노인들 스스로가 건강에 관심을 갖고 몸을 움직이며 아프지 않도록 몸을 관리하고(자강),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살 길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고(자립), 자강과 자립을 기반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공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현재 우리 고령사회는 고비용 구조라고 지적했다. 의료경비가 많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장수사회는 고령환자가 병상에 오래 있는 현재의 구조보다 의료진이 환자를 찾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노인성 질환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의사가 아니더라도 노인 환자를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노인복지가 최고라는 스웨덴의 경우 와병환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우선시 한다"며 "거동이 안되는 환자가 병원에 오면 의사가 보지 않고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가 '왜 이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최소한 거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것만으로도 발생할 의료 비용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체제에서는 고령환자가 거동을 못하고 오래 누워 있게 되면 간병인을 써야 하고,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면 몸에 욕창과 각종 염증이 발생해 의료비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고령자는 일단 '움직이는 것'이 저비용 장수사회의 기본 조건으로 봤다. 초고령사회를 피할 수 없다면 비용을 줄여 충격을 줄이자는 것이다.
박 회장은 "노화 연구를 하면서 100세 안팎의 노인을 수없이 많이 만났는데, 노화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기존 생각을 깨는 어르신들을 보게 됐다"며 "움직이고 일하며 팔팔하게 사는 노인들을 보며 감동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화는 죽음의 과정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 '홀리 에이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꾸준하게 움직이는 것을 박 회장은 건강한 장수, 홀리 에이징의 요건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힘이 든다고 움직임을 줄일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움직이고 좋은 음식을 먹는 등 건강을 행복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한다면 누구든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박 회장의 지론이다.
이 같은 건강의 원리를 알리기 위해 박 회장은 나이든 남성들을 대상으로는 요리교실인 '골드 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노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우리춤 체조'를 창안해 보급했다.
박 회장은 올해로 만 75세로 고령이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을 바쁘게 움직이면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인터뷰 중에도 박 회장은 자주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 회장의 어머니는 96세 고령으로 고향인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전남대 석좌교수기도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은 전남대가 있는 광주에서 어머니와 지내고 일주일에 한 번은 IVI에 나와서 일을 본다. 한 달에 한번은 직전에 재직했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IGIST)를 찾아 후학들과 논문과 연구주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
그가 제시한 '홀리 에이징'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