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연(淳于衍)은 OO를 이용해서 허황후를 독살했다

      2024.01.06 09:59   수정 : 2024.01.07 13:3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나라 선제는 허황후를 황후로 책봉했다. 허황후는 슬기롭고 어질며 사서를 많이 읽어서 총명했고, 후궁 비빈(妃嬪)을 통솔하여 모든 일에 예와 도리에 맞게 처리했다.

그런데 선제가 허황후를 급하게 황후로 책봉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궁에는 대장군 곽광(霍光)이 실세로 자리하고 있었다.
곽광에게는 부인 현(顯)씨가 있었는데, 그녀는 권력욕과 질투심이 강했다. 그녀는 자신의 막내딸인 성군(成君)을 황후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현씨 부인이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허황후는 잉태까지 했다. 현씨 부인은 별다른 방법이 없어 거의 포기할 즈음 기회가 생겼다. 분만을 앞둔 허황후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시 담당 의사는 여의사인 순우연(淳于衍)이었다. 순우연은 한나라 때의 궁중 산부인과 여의사로 날마다 입궁을 해서 황후의 병을 간호했다. 문헌 기록상 중국 최초의 여의사로 알려져 있다.

순우연의 남편은 궁의 문지기였다.

남편은 순우연에게 “곽광의 부인인 현씨에게 들려서 인사를 드리고 그 김에 나를 안지감(安池監) 벼슬로 청탁해 주실 수 있겠소?”라고 부탁을 했다.

순우연은 남편이 벼슬을 하면 집안 살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남편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순우연은 현씨 부인을 찾아가 “부인께 청이 있습니다. 부인께서 저를 총애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곽광 장군에게 잘 말씀드려서 제 남편에게 안지감 벼슬을 내려주십시오.”라고 했다.

현씨 부인은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기다가 눈을 번뜩이더니 시종들을 물리쳤다. 그녀는 바로 붓과 종이를 준비하더니 글자를 써 내려갔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건네려는 것 같았다.

내용인즉슨, ‘자네가 고맙게도 나를 찾아 주었으니, 나 역시 자네에게 보답하려는데 괜찮겠는가?’라고 적었다.

순우연은 “부인께서 제 청을 들어주시는 대가로 말씀하시는 일이라면 안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현씨 부인은 ‘곽광 장군은 평소 막내딸 성군을 아껴서 특별히 귀한 자리에 오르게 하고 싶은데, 자네 신세를 졌으면 하네.’라고 적었다. 순우연은 “어떤 신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현씨 부인은 ‘보통 부인(婦人)이 아이 낳는 것은 큰일이라서 출산을 하다가 도중에 열 사람 중 아홉은 죽고 하나만 살아나네. 지금 황후가 해산달에 다다랐으니 독약을 먹여서 제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성군은 곧 황후가 되지 않겠는가. 자네가 도와주어 성사된다면 부귀영화를 자네와 함께하겠네.’라고 적었다.

순우연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곧바로 붓글씨로 ‘의원들이 약을 섞어 조제하여 올리면 먼저 맛을 봐서 독의 유무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으니 어찌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적었다.

현씨 부인은 ‘이것은 자네 하기에 달렸을 것이네. 곽광 장군이 천하를 호령하시는데 누가 감히 역모를 논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위급하게 되면 내 지켜 주겠네. 다만 자네가 가담할 뜻이 없을까 걱정일세.’라고 적었다.

순우연을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순우연은 붓글씨 대화가 적힌 종이를 물에 적셔서 먹물을 풀어 버린 후 현씨 부인 집에서 물러나왔다.

순우연은 황후의 해산일에 맞춰서 생 부자(附子)를 가루로 내서 장정궁(長定宮)에 가지고 들어갔다. 부자는 성질이 아주 뜨겁고 맛은 맵고 달며 대독(大毒)한 약재이다.

부자는 미나리아재비과인 오두(烏頭)의 뿌리로 아코니틴이란 독성분은 중추 신경계를 자극해서 감각이상, 호흡곤란, 경련, 쇼크를 유발할 수 있고 소량으로도 심장호흡부전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생부자는 독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사약(賜藥)의 주 원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부자는 냉증제거나 관절염 등의 치료 목적으로 한의서 처방에도 들어가는데, 이 때 부자는 감두탕(甘豆湯)에 넣어 달여 독을 제거하고 이후에도 찬물에 하룻밤 이상을 담가서 수치를 해서 사용한다.

황후가 해산한 다음 순우연은 황후전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구석에서 아무도 몰래 태의(太醫)가 만들어 온 대환(大丸)을 으깨서 여기에 숨겨 온 부자가루를 섞어서 다시 환으로 빚어 놓았다.

순우연이 황후에게 환약을 올렸다. 황후는 순우연을 멀끔하게 쳐다보았다. 어서 한번 먼저 먹어 보라는 것이다. 순우연은 황우 앞에서 부자 가루가 안 들어간 환약을 하나 꺼내서 씹어 삼켰다. 그러고 나서는 부자가 섞인 부자환을 집어서 황후에게 올렸다.

황후가 부자환을 씹어 삼키더니 잠시 후 “혀가 따끔거리고 머리가 띵하면서 어지럽고 아프구나. 구역질도 난다. 가슴도 답답해지구나. 혹시 약 속에 독이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순우연은 “이미 보신 바와 같이 제가 한 알을 먹어 봤지만 독은 없었습니다. 안심하고 마저 삼키셔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황후는 부자환을 삼키고 나자 잠시 후 구토를 했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이후 호흡곤란으로 붕서(崩逝)했다.

순우연은 황후전을 나와서 현씨 부인에게 가서 “일을 잘 처리했습니다.”라고 했다. 현씨 부인은 “수고가 많았다.”고 답했다.

황후가 갑자기 환약을 먹고서 붕서한 사건을 이상하게 여긴 신하 중에 한 명이 상소를 했다. ‘이것은 독살로 보이니 황후의 병 치료를 담당한 의원들을 체포해서 옥에 가둬 황후의 죽음에 대한 실체를 밝혀야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순우연을 비롯한 의원들이 모두 옥에 갇혔다. 그러나 고문을 해도 아무도 실토하는 의원이 없었다. 사실 순우연 말고는 아는 이가 없었다.

만약 순우연이 입을 열면 현씨 부인뿐만 아니라 곽광 장군에게도 불똥이 튈 것은 뻔했다. 그래서 현씨 부인은 장군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 역모는 제가 순우연과 함께 모사(謀士)를 꾸민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옥리(獄吏)에게 순우연을 고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라고 사정을 했다.

곽광은 깜짝 놀라며 묵묵히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계략을 꾸민 것에 당황했던 것이다. 곽광은 전혀 모르고 있던 계략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후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곽광은 조옥(詔獄)에서 보고서가 올라오자 “순우연은 논죄하지 말지어다.”라고 하명했다. 우선은 이렇게 일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사건이 좀 잠잠해지자 현씨 부인은 순우연을 불러 사례를 했다. 현씨 부인은 순우연에게 진보광 집안에서 생산된 포도 그림이 그려진 비단 24필과 산화릉(散花綾) 25필을 보냈다. 이 비단은 현씨 부인의 저택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진보광의 아내는 비단 직조법을 전수 받았기에, 현씨 부인이 진보광의 아내를 집으로 불러서 직기를 이용해서 비단을 짰다. 또한 진주구슬 한 꿰미와 푸른 비단 100단, 돈 백만 전, 황금 백 냥을 주었다. 게다가 큰 저택을 지어 주었으며 많은 노비까지 주었다.

그런데도 순우연은 곽씨 부인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공을 이뤄 주었는데 내게 겨우 이렇게 보답하다니요?” 순우연은 이 사례가 부족하다고 불만족스러워했다.

다음해 현씨 부인의 딸 성군이 마침내 황후로 책봉이 되었다. 현씨 부인과 곽광 장군 일가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곽광이 죽고 나자 선제는 독살당한 허황후의 아들 석(奭)을 황태자로 삼아버렸다. 현씨 부인의 딸은 황후이면서 후사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곽씨 가문의 위세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미망인이 된 현씨 부인은 분통해서 다시 석을 독살하려고 했으나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곽씨 가문은 반란을 일으켜서 정세를 모면해 보려고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다. 심지어 허황후의 독살을 주도한 것이 밝혀져 곽씨 가문의 일족은 멸문지화를 맞이했다.

의사이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황후 독살에 가담한 순우연(淳于衍), 최초의 여의사라는 칭호와 함께 불명예스러운 치욕적인 역사로 남아 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은 끝이 없다.

** 제목의 ○○는 ‘부자’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紀事. 漢書, 許皇后傳: 霍光夫人顯, 欲貴其小女, 道無從. 明年, 許皇后當娠病. 女醫淳于衍者, 霍氏所愛, 嘗入宮侍皇后疾. 衍夫賞爲掖庭戶衞, 謂衍: “可過辭霍夫人, 行爲我求安池監.” 衍如言報顯. 顯因生心, 辟左右, 字謂衍: “少夫幸報我以事, 我亦欲報少夫可乎?” 衍曰: “夫人所言, 何等不可者?” 顯曰: “將軍素愛小女成君, 欲奇貴之, 願以累少夫.” 衍曰: “何謂邪?” 顯曰: “婦人免乳大故, 十死一生. 今皇后當免身, 可因投毒藥去也. 成君即得爲皇后矣. 如蒙力事成, 富貴與少夫共之.” 衍曰: “藥雜治, 當先嘗, 安可?” 顯曰: “在少夫爲之耳. 將軍領天下, 誰敢言者? 緩急相護. 但恐少夫無意耳.” 衍良久曰: “願盡力.” 即擣附子, 齎入長定宮. 皇后免身後, 衍取附子并合大醫大丸, 以飲皇后. 有頃曰: “我頭岑岑也, 藥中得無有毒?” 對曰: “無有.” 遂加煩懣, 崩. 衍出, 過見顯, 相勞問, 亦未敢重謝衍. 後人有上書告諸醫侍疾無狀者, 皆收繫詔獄, 劾不道. 顯恐事急, 即以狀俱語光. 因曰: “既失計, 爲之無令吏急衍.” 光驚鄂, 默然不應, 其後奏上, 署衍勿論. (기사. 한서 허황후전: 곽광의 부인 현은 자기 막내딸을 귀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듬해에 허황후가 임신하여 편찮았다. 여의사 순우연이라는 자는 곽씨가 친애하던 사람으로, 늘 입궁하여 황후의 병을 간호했다. 연의 남편 상은 궁정의 문지기였는데, 연에게 “곽부인께 들러서 인사드리는 김에 나를 위해 안지감 벼슬을 청탁해 주시오.”라 했다. 연은 그 말대로 현을 찾아갔다. 현은 그로 인해 마음이 동해서 시종들을 물리치고는 글자로 써서 연에게 “자네가 고맙게도 나를 찾아 주었으니, 나 역시 자네에게 보답하려는데 괜찮겠는가?”라 하니, 연은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일이라면 안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라 했다. 현이 “장군은 평소 막내딸 성군을 아끼셔서 특별히 귀하게 만들고자 하는데, 자네 신세를 졌으면 하네.”라 하자 연은 “무엇에 대해서인지요?”라 했다. 현은 “부인이 아이 낳는 것은 큰일이라, 열 사람은 죽고 하나만 살아나네. 지금 황후가 해산하게 되었으니 독약을 먹여서 제거할 수 있지. 그러면 성군은 곧 황후가 될 걸세. 자네가 도와주어 성사된다면 부귀를 자네와 함께하겠네.”라 했다. 연이 “약을 섞어 조제하면 먼저 맛을 보도록 되어 있는데, 어찌 가능하겠습니까?”라 하자 현은 “자네 하기에 달렸네. 장군이 천하를 호령하시는데 누가 감히 말을 하겠나? 위급하게 되면 지켜 주겠네. 다만 자네가 가담할 뜻이 없을까 걱정일세.”라 했다. 연은 한참 후 “힘을 다하겠습니다.”라 하고, 곧 부자를 빻아서 장정궁에 가지고 들어갔다. 황후가 해산한 다음 연은 태의가 만든 대환에다가 부자를 합해서 황후에게 복용시켰다. 얼마 후 “머리가 띵하면서 아프구나. 약 속에 독이 있는 것이 아니냐?”라 하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번만이 심해져서 붕하였다. 연이 나와서 현을 뵈러 가자, ‘수고했다’고 다독이기는 했으나 감히 연에게 중하게 사례하지 못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서 황후의 병 치료를 잘못한 의사들을 고발하니 모두 체포하여 조옥에 가두었는데, 캐물어도 실토하지 않았다. 현은 일이 급하게 된 것이 두려워서 즉시 곽광에게 사정을 모두 말했다. 그리고는 “이미 계획은 틀어졌으나, 그 일로 옥리가 연을 닦달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 했다. 곽광은 깜짝 놀라서 묵묵히 대답하지 않더니, 그 후 보고서가 올라오자 ‘연은 논죄하지 말 것’이라고 썼다.)
○ 西京雜記: 霍光妻遺淳于衍蒲桃錦二十四匹, 散花綾二十五匹, 綾出鉅鹿陳寶光家. 寶光妻傳其法, 霍顯召入其第, 使作之, 機用一百二十鑷, 六十日成一匹, 匹值万錢. 又與走珠一琲, 綠綾百端, 錢百萬, 黃金百兩, 爲起第宅, 奴婢不可勝數. 衍猶怨曰: “吾爲爾成何功, 而報我若是哉?” (서경잡기: 곽광의 아내는 순우연에게 포도백 24필과 산화릉 25필을 보냈는데, 이 무늬비단은 거록 사람 진보광의 집안에서 생산되었다.
보광의 아내가 그 직조법을 계승했으므로 곽광의 부인 현은 저택으로 불러들여서 짜게 했는데, 직기에는 발로 밟아 조종하는 판이 120개나 사용되고 60일에 한 필이 완성되었으며 한 필 값이 만 전이었다. 또 주주 한 꿰미와 녹릉 100단, 돈 백만 전, 황금 백 냥을 주고 저택을 지어 주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노비까지 주었다.
연은 그래도 원망하면서 “내가 당신을 위해 어떤 공을 이뤄 주었는데 내게 겨우 이렇게 보답하는가?”라고 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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