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 미국 주식 보다 후진 5가지 이유: 2화
2024.01.09 06:00
수정 : 2024.01.09 07:19기사원문
지난 6일 작성한 '이환주의 개미지옥' 1편에 기대 이상으로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렸다. 네이버 기준 약 100여개의 '좋아요' 응답이 있었고, 댓글에도 '시원하다', '정말 그렇다'는 내용이 많았다.
레거시 미디어인 방송과 신문 지면의 경우 잘 다루지 않는 실전 개미 투자자의 '감상과 느낌'에 공감하는 개인 투자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알짜 배당기업이 별로 없다
미국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처럼 배당주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바로 △배당 블루칩 △배당 챔피언 △배당 귀족 △배당 왕 종목이다. 각각 5년, 10년, 25년, 50년 이상 배당금을 꾸준히 늘려온 주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배당 왕 종목은 워런 버핏도 투자한 코카콜라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노후 대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도 미국 주식에 대규모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업들이 경제 상황에 상관없이 배당을 꾸준히 증가시켜 오고 있다. 초기 애플과 같은 성장 기업은 배당을 주는 대신 기업의 이익 잉여금을 성장(투자)에 사용하고, 이는 결국 주주들에게 배당보다 훨씬 큰 수익, 시세 차익으로 돌아온다.
미국 주식 시장은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교과서에 나온 '주주 이익 극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한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법은 기업의 이윤을 배당으로 돌려주거나, 재투자를 통해 기업의 가치(주식 가격)를 올리는 방법이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경영자의 능력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실현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로 나뉜다. 심지어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조차 주가가 지지부진하면 대표 자리에서 쫓겨 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주식 시장에서는 배당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나누는 일이 미국처럼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순환출자를 통해 아주 소수의 지분으로도 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미국 교과서에도 나오는 단어인 '재벌' 위주의 경영으로 '주주의 이익'과 '창업자나 CEO'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이던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경제 정책을 통해 "대기업진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대부분 해소됐다"고 자평했지만 아직은 그의 말이 그가 추구한 이상을 잘 실현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국내 주식 시장은 특정 기업이 사업을 통해 많은 이윤을 쌓아도 배당을 통해 주식 소유 비중대로 이익을 나누게 되면 창업자나 CEO의 이익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 구조다. 재벌 들은 기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사익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 듯 보인다. 반면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그 자체로 최대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과 창업주의 이익이 일치한다. 이익을 배당으로 나누든, 재투자를 통해 기업의 주가를 높이든 창업주와 소액 주주들이 함께 윈윈하는 구조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대표 배당주라고 분류되는 통신사, 은행과 금융지주, 일부 인프라 기업이 5% 이상의 배당을 꾸준히 주고는 있지만, 사실상 주가의 상승이 막혀 있는 경우가 많아 매력이 떨어진다.
수면제 먹고 깨어났다 간 쪽박 찰 수도
개미 투자자로 주식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멘탈 관리다. 아무리 좋은 종목을 골랐더라도 해당 기업의 성장과 이익이 충분히 주가에 반영될 만큼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장 좋은 투자 전략이 '좋은 종목을 고른 후에 수면제를 먹고 10년 뒤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종목 중에는 '묻지마 장투'에 적합한 종목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우량한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에 투자하고 10년을 묵혀둔 서학 개미의 경우 꽤 높은 수익률을 보이지만 한국 주식 시장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2010년 11월 30일에 코스피에 상장된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에 투자를 하고 10년을 묵힌 2020년에 주가를 확인할 경우 삼성전자 1종목을 제외하고 나머지 9종목은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기업의 주가가 낮아졌지만 시계열을 더 확대하더라도 국내 주식 시장의 장기 성장성은 미국 시장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지금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 1월 8일의 코스피 주가지수는 1950포인트 정도다. 10년 뒤인 2024년 1월 8일 종가가 2560정도로 10년 동안 코스피 지수 평균은 31% 성장하는데 그쳤다. 1년에 주가가 3% 성장했다는 뜻인데 이는 물가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성장이 없었다는 얘기다. 은행에 예금해도 2~3% 금리를 매년 받으며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 주식에 넣어놓고 뜬 눈으로 밤새고, 매일 주가창을 보는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안 하니만 못한 투자가 되는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인 2014년 1월 미국의 S&P 500지수는 1695에서 10년 뒤인 현재 4697로 177% 성장했다. 아무 고민 하지 않고 미국 S&P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만 넣어뒀더라도 매년 자산이 17%씩 늘어났다는 의미다. 워렌 버핏이 2013년에 "유서에 내가 죽은 뒤 아내에게 남겨진 돈의 10%만 국채 매입에 투자하고, 나머지 90%는 전부 S&P 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고 썼다"는 말은 농담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서학개미 사이에서 매년 배당이 크게 증가하는 SCHD(배당성장ETF)나, 년 10%대 배당을 주는 JEPI(고배당ETF) 같은 종목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배당과 주가 성장을 합친 수익률을 따져보면 S&P 지수를 추종하는 ETF의 수익률이 높은 경우가 많다. 일부 투자자들은 그래서 "차라리 S&P 지수를 추종하는 SPY 같은 종목에 투자하고 매년 일정 주식을 팔아서 배당처럼 쓰는 것이 배당 ETF 투자보다 유리하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후진적인 시장과 금융감독시스템
최근 뉴스에 홍콩 ELS 판매로 인해 투자자들의 손실이 수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홍콩 ELS는 홍콩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금융 상품이다.
예를 들어 홍콩 지수가 5000인데 반토막(2500)이 나지 않으면 은행 예금이나 적금보다 높은 이율을 주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대부분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 창구에서는 "홍콩 지수가 절반이 떨어지는 것은 삼성전자가 망할 확률보다 적다"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판매에 들어간다. 홍콩 ELS에 투자한 연령을 봐도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라고 한다. 각 금융사 판매 창구에서는 투자 상품에 눈이 어두운 고령층에게 '원금보장'을 해주는 듯한 뉘앙스로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옵티머스, 라임, 디스커버리 펀드 등도 조금씩은 다르지만 이번 사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금융사에서는 해당 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고지를 충분하게 하지 않고 불완전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약 10여년 전 동양증권은 부도가 나기 직전까지 고객들에게 부실 채권을 팔았다. 부실이 사실상 확정됐음에도 안전한 상품이라고 고객을 속이고 개인투자자들에게 빛더미를 떠민 것이다. 당시 뉴스를 보면 동양증권은 직원들에게 부실채권을 팔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사실상 부실 폭탄을 개인에게 떠밀도록 직원들을 독려했다. 동양그룹 부실 채권을 산 사람들 99% 이상이 개인투자자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익에 눈이 먼 금융사들의 탐욕도 문제로 지적되지만 여기에 앞서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로록 이를 방치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문제도 크다.
기자는 2016년 8월 11일 '만능통장 'ISA'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자수첩을 썼었다. 금융당국은 세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우리 국민을 위해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내놨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사실상 알맹이는 국민보다는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사의 배만 불리는 상품 같다는 내용이었다. 출시 당시보다 혜택도 늘고 ISA 계좌의 절세 효과도 많이 업그레이드 됐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글쎄'다. 8년이 지난 올해 1월 7일자 조선일보의 한 기사 제목은 "'절세 끝판왕'이라더니... 20년 금융맨조차 '머리에 쥐 났다'"였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국민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상품이라지만 너무 복잡해 사실상 그 혜택이 크지 않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수년 전 금융부 기자로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감독 기구인 금융감독원을 출입하면서 느꼈던 한 가지 사실은 '금융당국의 1순위는 국민이 아니라 그 산업의 부흥, 즉 은행과 증권사 같은 기업들의 이익이 우선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환주의 개미지옥] 첫 화의 댓글에는 "불법공매도 뒤를 봐주는 금융카르텔 때문에 후진국이다. 발본색원하고 형량도 세게 때려야하는데 솜방망이 처벌 하고 있으니 주식시장이 교란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실제로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무차입) 대형 기관투자자 등이 암암리에 진행해 온 불법공매도에 대한 지적은 수년간 지속됐다. 이를 방기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
독자들의 눈에 띄는 제목을 달기 위해 '한국 주식이 미국 주식 보다 후진 다섯 가지 이유'라고 정했다. 하지만 사실 전부 이야기를 하자면 다섯 가지는 커녕 열 가지도 넘는다.
주식투자 후일담을 늘어 놓으면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금융관료 출신들이 정계를 장악한 '모피아 문제', 수십억원대 사기를 치더라도 값비싼 전관 변호사를 모셔와서 집행유예를 받는 우리나라의 '사법 카르텔', 고위 관료직을 수행하다 은퇴를 하고 기업의 사외이사나 감사, 대형로펌에 취업하는 '그들만의 나눠먹기'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개미지옥에 빠져든 개미도 잘못이지만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나쁜놈들이 진짜 못된놈들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