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 몇 장으로 패피 변신… MZ도, 멋쟁이 어르신도 ‘구제쇼핑’ 옵니다
2024.01.14 14:00
수정 : 2024.01.14 19:1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대구=김장욱 기자】 1970년대 대구의 입구라는 뜻에서 유래된 관문(關門) 시장은 대구도시철도 1호선 서부정류장 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1960~1970년대 남구 대명동 서부정류장 일대는 달성군, 경북 고령·성주군, 경남 합천군 일대에서 대구로 드나들던 교통로이자 길목이었다. 서민들의 왕래가 활발하니 정류장이 들어서고, 물자가 모이면서 장터가 열렸고, 대구 남부의 물자 집산지로 유명해졌다.
그러면서 대명동 일대는 인구 증가로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주택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에게 농산품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필수품을 공급하기 위해 관문시장(대지면적 5564㎡, 173개 점포)이 1972년 4월 민영 상설시장으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달서구 송현동과 상인동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관문시장을 찾는 고객이 급증했고, 관문시장 인근 도로 주변으로 상가가 하나둘 증가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됐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은 2005년 시장으로 인정받아 관문상가시장(토지면적 1만4242㎡, 점포 290개)으로 등록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관문시장보다는 관문상가시장이 번성하고 있으며, 일반인은 관문시장과 관문상가시장을 합쳐서 관문시장으로 통칭하고 있다.
■대구의 동묘시장, 패션피플의 성지 구제골목
서울 종로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구제시장인 동묘벼룩시장이 있다면 대구에는 이에 버금가는 전국에서 옷을 사러 오는 구제시장인 관문시장이 있다. 인터넷에 관문시장을 치면 제일 많이 노출되는 단어가 구제골목이다. 구제골목에서는 만원권 지폐 몇 장이면 누구나 패션 피플이 될 수 있다. 구제골목은 관문상가시장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3지구 동쪽에 형성된 시장이다. 이곳에는 패션, 의류, 명품 간판을 단 옷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30여년 전 몇몇 상인이 점포도 없이 노점으로 시작한 이 골목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일부 마니아들은 여기를 대구의 동묘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구의 최대 구제골목답게 화려한 패턴의 옷부터 스포츠 의류, 구두, 가방, 벨트, 스카프 등 품목도 매우 다양하다. 최근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형태의 전환으로 할인상품, 재활용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제골목에는 옷가게들이 인근 주택가까지 늘어나고 있어 시장과 인근 주택가 가게까지 합치면 구제가게는 400곳을 훌쩍 넘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품은 가격대가 다양하다. 물품 상태나 브랜드에 따라 2000원이면 구입 가능한 티셔츠부터 5000~1만원이면 구입 가능한 청바지류, 구찌 같은 명품 옷이나 구두 등은 몇십만원까지도 거래되고 있다.
과거에는 40~50대 중년 이후의 고객이 골목의 단골이었지만 요즘은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10대와 20대들은 빈티지 패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오고, 40대와 50대는 독특한 디자인의 수입의류를 싸게 사기 위해, 60대는 알뜰쇼핑을 위해 찾는다.
노후화된 건물로 2004년 시장정비사업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재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류, 구두, 가방 등이 세탁과 수선을 거쳐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중고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전국적 구제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넓은 규모, 편리한 교통, 다양한 품목의 종합시장
관문시장은 모두 5개 지구로 나눠 있다. 1·2·4·5지구는 반찬, 먹거리, 농수산물, 식당, 옷가게 등 다양한 점포들이 입점해 있고 3지구는 구제 물품을 판매하는 점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 의류신발 78곳, 농수축산물 47곳, 가공식품 28곳, 음식점 16곳, 기타 가정용품 판매 35곳으로 204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대형 가전제품을 제외하고 대형마트에서 취급하는 물품은 거의 다 판매하고 있다.
특히 농수축산물은 매우 신선하다. 이것은 과거 대구 근교에서 갓 생산된 과일·채소와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부산·경남권에서 반입되기 쉬운 신선한 해물이 거래되던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외 관문상가시장은 채소, 생선, 과일, 반찬, 식료, 즉석요리, 패션 등 전통시장이 갖출 모든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다.
여느 시장처럼 음식 군것질거리 역시 풍족하다. 시장 요리는 대부분 즉석요리로 수제(手製) 간식들이 주를 이루며, 음식 재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조리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오감으로 느끼면서 맛을 즐길 수 있다.
관문시장에는 강정, 어묵, 칼국수, 족발, 돼지국밥 등 소문난 맛집들이 있다. 시장 대표 맛집으로 소문난 관문강정 가게 앞에는 각종 방송 다수 출연을 자랑하는 플래카드로 도배가 돼 있다. 장사 잘되느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전국적으로 입소문이나 배달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명절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자랑이다.
이 외에 관문시장 곳곳에는 방송에 출연하지는 않은 숨겨진 맛집도 많아 기회가 된다면 지인들과 관문시장을 방문해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시설 및 경영 현대화 사업 등 추진 박차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주변 도로의 여건 또한 좋아 접근성이 좋은 시장의 입지조건에 맞춰 2005년과 2009년 시장 내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또 2005년과 2009년 제1공영주차장과 2014년 제2공영주차장을 조성했다. 이용고객과 매출 증가 추세에 발맞춰 고객과 상인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이용고객 및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의 일환으로 2011~2012년 고객지원센터도 건립했다.
지상 1층 규모 건물로 놀이시설, 운동시설, 현금지급기, 화장실 등을 조성해 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야외에서 주변 경관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고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이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박삼수 상인회장은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에 밀려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관문시장은 일찍부터 시설 및 경영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시장이 매우 활성화돼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1~2014년 상인대학 운영, 2015년 상인조직 역량강화 지원사업, 2017~2018년 골목형시장 육성사업, 2019년 냉방형 펜 설치, 2022년 화재로부터 안전성 강화를 위해 화재감지기를 연기감지기에서 화재감지력이 좋은 불꽃감지기로 교체하는 등 다양한 사업도 추진해오고 있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전국 유통망을 갖춘 대형마트의 등장 및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온라인 판매의 성행으로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잃고 많은 상인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서 "관문시장 상인회와 함께 고객 유치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설과 경영 현대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문시장 주변에는 앞산공원과 두류공원을 찾는 이용객의 방문이 많고, 앞산 축제 및 이벤트, 두류공원 야외음악당, 치맥 페스티벌 시즌 방문객이 급증한다.
또 인근에는 남구의 관광자원인 앞산 케이블카, 앞산공원 전망대, 앞산 해넘이 전망대, 앞산 빨래터공원, 안지랑 곱창골목 등이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가족단위 여행객과 체험자원도 풍부하다.
이에 남구청과 상인회는 남구의 관광자원, 구제골목과 연계해 관문시장을 활기가 넘치는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활성화 지원사업 중 특성화시장육성(문화관광형시장)사업에 도전 중이다. 체험관광 프로그램 운영, 특화상품 개발, 쇼핑환경 개선, 고객편의 시설 확충, 상인 교육을 통한 역량강화로 고객서비스 향상, 온라인 판매 확대, 젊은 층 고객 유치 등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조 구청장은 "남구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관문시장이 더욱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gimju@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