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공의 없어… 응급실 막내 된 교수님 '고군분투'
2024.01.15 18:21
수정 : 2024.01.16 12:06기사원문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 앞 복도가 환자와 보호자, 구급대원들로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동차 접촉사고, 폭행사고 등으로 119 구급차에 실려온 성인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홍지민양(12) 가족이 보였다.
■"의사가 없다" 6개월간 소아과 응급진료 '소멸'
홍양 가족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뒤 이태원동에 살고 있다. 홍양 어머니 홍하나씨는 "병원이 소아안심병원으로 지정돼 있어서 제때 진료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아병상에는 12세 남자아이가 자리를 잡았다. 이마에 가로 5㎝, 세로 3㎝에 가까운 상처가 나 있었다. 간호사가 소독약을 바르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사는 이재연군은 학원 버스에서 내려 빙판길을 뛰다가 계단에서 이마를 부딪혀 119에 실려왔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인근 병원 응급실 포화로 이곳까지 오게 됐다.
홍양이 성인 환자들을 제치고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소아 전용 응급실 병상 덕분이다. 1개월 전만 해도 홍양에 대한 야간진료는 이 병원에서 불가능했다. 전국에 퍼진 소아과 의사 부족현상 때문이다.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의사 부족에 시달렸다. 소아과 기피현상으로 전공의가 부족해지자 이 병원은 지난해 5월까지 교수들이 야간진료를 맡았다. 수련의가 맡을 자리를 경력 의료진이 몸으로 때운 셈이다. 교수들이 쓰러지는 사태가 나오자 6월부터는 연말까지 야간 소아과 응급진료를 받지 않았다. 소아과 응급의료 서비스가 소멸 상태에 다다른 셈이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서울시와 함께 대안을 겨우 찾았다. 서울시가 구축한 '서울형 야간·휴일 소아의료체계'다. 6개월간 문을 닫았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야간 소아 응급진료는 지난달 20일부터 재개됐다. 이 병원은 서울 서북권역의 '우리아이 안심병원'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3명을 투입, 각각 주 2회씩 야간진료를 본다. 안심병원 운영을 위해 응급실 28개 병상 중 4개를 소아 전용으로 전환했다.
■소아과 '폐과'→전공의 급감→'응급실 뺑뺑이'까지
서울시가 소아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필수의료 부족현상과 맞물려 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료진이 구속되자 아동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소아과 진료를 중단하겠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의원급 병원이 문을 닫으며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렸다. 동시에 의대 학생들의 소아과 전공의 지원도 급감, 2022년부터 응급실에서 소아과 야간진료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리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됐다"며 "야간에도 경증 환자는 의원급에서 해결하고, 응급실은 위급한 환자가 적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권역별로 의원급 9곳, 병원급 8곳, 전문응급센터 3곳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의원급을 대상으로 '달빛어린이병원'을 별도 운영해 상호 보완한다.
양현종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공의가 없어 1년 가까이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밤새 일하다 쓰러지기도 했다"면서 "주변 병원 응급실이 다 닫으면서 환자가 몰려 더욱 힘들었지만 안심병원 지정 후에는 부모들의 패닉이 많이 줄어 응급실 운영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지원으로 다시 소아과 응급진료가 재개됐지만 사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소아과는 필수 의료이지만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비급여 진료도 거의 없어 의사나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운영이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게 의료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양현종 교수는 "소아과는 무조건 적자다. 정부가 지원하지만 충분하지 않아 병원에서도 같은 규모로 지원해줘야 유지할 수 있다"면서 "우리 병원은 웬만한 상급종합병원보다 많은 소아과 세부전공 교수님들이 계시지만 필수의료과는 돌아가면서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