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큰데 의료수가 낮고 소송 잦아…"아이 볼 의사가 없다"

      2024.01.17 19:08   수정 : 2024.01.17 19:08기사원문
"이미 대한민국의 소아청소년과는 무너졌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

충청권에서 아동병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A원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대학병원에서 10년 있었고, 병원을 개업한 지는 10년이 넘어간다. 도합 20년 넘게 아이들을 진료했지만 이제는 붕괴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장성급 의사만 남은 아동병원

일단 더 이상 아이들을 볼 의사가 없다고 한다. A 원장은 "우리 병원 의사 정원이 9명인데 4명이 나가고 전문의를 못 구한 지 2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과 병원을 군대에 비유하면 장성들만 남은 상황"이라며 "사람이 수혈돼야 조직이 돌아가는데, 지금은 장성들이 당직은 물론 현장에서 가장 허드렛일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많은 상급병원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미달인 상황. A 원장은 "이제 대학교수들마저 번아웃에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며 "나가서 새로운 소아과를 개업하는 것도 아니고, '놀겠다'는 사람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의사들에게 소아청소년과는 지킬 가치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원장은 소아과 지원을 기피하는 원인을 '하이 리스크 로 리턴(높은 위험부담에 낮은 보상)' 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과 전문의 수련 내용은 난이도가 높고 사망자도 많아 리스크가 높은 과"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소아과를 단순히 감기나 치료하는 과로 접근해 의료수가를 책정했고, 의사들은 소송 등 온갖 위험 부담을 다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료도 떠나고,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의사들이 그런 리스크를 지고 굳이 소아과에 남아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소아과 전공했지만 일반의원 개업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모씨(37)는 성인 진료로 돌아섰다. 김씨는 "동료 의사도 부족한데 간호사 인력도 충원하기 힘들어 휴일도 없이 항상 번아웃에 허덕였다"며 "내가 진료하고 있던 아이를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키기도 힘들어진 환경에서 소송 위험도 커서 이대로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부모들의 비수 같은 말들에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환자 수는 제어할 수 없었고, 수입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이제 다시 그 복잡한 대기실 안을 비집고 가서 진료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소아과 선배 의사들은 잇따라 일반의원으로 개업했다. 그가 지원할 때만 해도 소아청소년과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 과에 남아 있는 동기들도 몇 안 남은 상황. 대학교수들도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아 많이 힘들고 지친 상태라고 한다.

김씨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을 소아과 붕괴의 신호탄으로 봤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숨지자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의료진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내가 선배 전공의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당시였다"며 "리스크가 너무 커지다 보니 그 이후로 지원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회상했다.

후배들만 부족한 게 아니다.
김씨는 교수들마저 떠나는 현 상황에 "배울 환경이 안 될 것 같아 걱정이 든다"고 했다. 가르쳐 줄 교수도 떠나고, 전문적 지식을 쌓기 어려워 제대로 된 전공의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에서 정말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시그널을 잘 읽어야 한다"며 "낙수과로 찍혀 훈련된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무너지고, 정말 복구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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