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자 양산, 기업 도산"…중대재해법 앞두고 애타는 中企
2024.01.23 15:16
수정 : 2024.01.23 15:1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사업주가 1인 다(多)역을 수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면 버틸 기업이 어디 있나요. 지금도 경영난, 구인난에 상황이 어려운데 누가 사업을 하고 싶겠어요."
인천에서 화장품 제조업을 운영하는 A 대표는 "현실적으로 지금 중소기업 중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기업이 몇 군데나 있겠냐"며 "영세기업엔 문을 닫으란 얘기와 똑같다"고 말했다.
50인 미만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앞두고 애를 태우고 있다. 법 본격 시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시행을 유예하는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됐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준비 등을 이유로 2년간 유예됐다. 이에 따라 27일부터 50인 미만의 사업장 83만7000여곳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법 적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년의 유예기간을 줬지만, 중소기업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규제에 대응할 여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코로나19와 3고 복합위기로 중소기업 대다수가 체질이 허약해진 상황에서 법까지 확대 적용되면 경영상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미만 중소기업 89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의 80.0%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준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인력 부족(35.4%) △예산 부족(27.4%) △의무 이해 어려움(22.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대표가 영업부터 생산, 총무 등 1인 다역을 맡고 있어 외부 조력 없이는 법에서 정한 의무사항을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안전관리자'와 같은 전문인력을 채용하려고 해도 이미 대·중견기업에 쏠려 인력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들의 몸값을 부담하기도 쉽지 않다.
가스 제조업을 운영하는 B 대표는 "일각에선 사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많은 투자가 필요해 중소기업 입장에선 그게 쉽지 않다"며 "인력난, 복합위기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은데 법까지 확대 적용하면 기업들을 허허벌판에 내려놓는 거랑 똑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를 요청하며 이번에 연장될 경우 더 이상 추가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유예가 연장될지는 미지수다. 유예안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며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탓이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줄 것을 다시 한번 호소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 폐업이 속출하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유예기간에 안전전문인력 확보 등 자체 예방노력을 강화해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중소기업의 존립과 근로자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여야가 다시 한번 협의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중소기업은 대표가 생산부터 판매, 영업까지 다 하는데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대표가 구속이나 처벌을 받게 되면 폐업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며 "법에 대응하기 위해선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