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서 억울하지 않도록… 쉽게 읽는 법률 안내서 펴냈죠"

      2024.01.22 18:21   수정 : 2024.01.22 18:21기사원문
사람은 언젠가 선택의 순간이 온다. 액수가 많든 적든, 좋든 좋지 않은 쪽이든 한쪽을 골라야 한다.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이것도 선택지중 하나다. 사람이 사망할 때 발생하는 '상속' 얘기다.


상당수 사람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때로는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해 불리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 알고 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데, 몰라서 그렇다. 김태형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사진)는 법정에서 이런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가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이라는 책을 낸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작용했다. 17년 법관 생활을 통해 해주고 싶던 얘기들을 틈틈이 기록해 쉽게 설명한 '안내서'다.

■"합리적 상속·이혼 등 노하우 쉽게 알리고파"

김 부장판사는 "상속은 언젠가 한번은 발생하고, 이혼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은데 당황하다 서투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됐다"면서 "특정 집단만이 아는 합리적 노하우를 책으로 쉽게 공유해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정서적 손실을 줄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상속뿐만 아니라, 이혼과 소년심판 얘기도 비슷한 분량으로 폭넓게 다뤘다. 일선 법원을 거친 후 가정법원 판사 생활 5년 동안 그가 담당했던 분야들이다. 이혼도, 소년심판도 상속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전문적 지식을 쌓은 부장판사 한 명쯤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 어른들도 손이 닿은 곳에 책을 두고 필요할 경우마다 언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 그러나 법과 관련된 책을 쓰면서 법조 용어를 빠트릴 수는 없었다. 책과 현실의 단어가 다르면 자칫 실제 상황에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고민이 배경이었다. 또 너무 가볍게 쓰다 보면 '실용서'의 주된 정보 전달 면에서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서 김 부장판사는 책 중간·중간에 상큼한 파란색과 사진·그림으로 '쉬어가는 페이지'를 넣는 배려심도 발휘했다. 여기엔 김 부장판사가 20여년 가까운 법관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책은 첫 장부터 호기심을 끌어당긴다. 얼마 남지 않은 상속재산에 욕심이 생겨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를 했다가 도리어 재판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유류분반환청구를 당하는 사례는 어떤 경우일까. 또 피상속인에게 혼외자가 있거나 나중에 이복형제, 이부형제, 계부모까지 등장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책은 마치 독자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듯이 친밀한 단어로 해설해 준다.

이혼과 소년심판은 인생에서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긍정·부정을 떠나 '죽음'이나 후손에게 남길 유산처럼 우리에게 꼭 찾아오는 문제들은 아니다. 그래서 목차 순서를 상속, 이혼, 소년심판으로 정하는 김 부장판사의 세심함도 책 속에 녹아 있다.

■"실패 경험이 재판에 도움"

김 판사는 서울대학교 기계·기계설계·항공우주공학부를 졸업한 소위 엘리트 출신으로 불린다. 하지만 어린시절 법조인이 아닌 예술가의 꿈을 꿨고, 실패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20대 때는 음악에 빠져 엠넷(M.net) 방송국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비디오자키(VJ)가 되어 활동했다"면서 "하지만 시청률이 오르지 않았고, 1년 후 계약 만료 통보를 받자 어린 마음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전문적인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4년 뒤 제37회 변리사 자격증을 따냈다.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4년 후 그의 손에는 제46회 사범시험 합격증이 쥐어져 있었다. 국내 최대 로펌의 법조인 옆에서 변리사로 일했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이런 실패와 도전에 대한 경험은 법정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혼과 소년심판 담당 판사 시절, 그에게 전달된 수많은 감사의 편지가 이를 방증한다.
소년재판을 받은 한 보호소년의 편지엔 '좋은 길로 가게해 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성공해서 좋은 사람이 될게요'라고 힘주어 쓴 필체가 담겨 있다고 한다.


김 부장판사는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사건 당사자나 다른 동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무색투명한 열린 마음이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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