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멈춰가며 육아 투혼… 용기 가져야 아는 기쁨 값져요"
2024.01.28 18:03
수정 : 2024.01.28 19:15기사원문
지난 25일 의령에서 파이낸셜뉴스를 만난 다둥이 아버지 박성용씨(50)와 어머니 이계정씨(48)는 아직 요람에 누워 있는 막내 예빛이(1)를 '10번'으로 소개했다. 슬하에 10남매를 키우며 이름과 함께 번호를 붙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 홈 구장인 경남 창원 NC파크에서 지난해 10월 열린 '경남도민의 날' 행사에선 '경남을 빛낸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맏이부터 10번째 막내까지 순서대로 등번호를 붙인 유니폼을 받았다. 번호를 매기는 게 일상이 된 계기다.
벌써 막내 티를 벗은 형 예율이(3)는 거실에서 낯선 기자와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동생 옆을 떠날 줄 몰랐다. 아버지 박씨는 "아이가 아직 숫자를 잘 몰라서 정확히 몇 번째 동생인지는 알지 못한다"며 웃었지만 벌써부터 동생을 챙기는 마음이 가득했다.
■어려움 있었지만, 무사히 세상 만난 막내
예빛이가 막내로 집안에 들어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5월에 세상에 나왔지만 집에 오기까지 3개월을 병원에 있어야 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이상이 있었던 탓에 태어난 지 2주 만에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아버지 박씨 역시 서울로 다니던 대학원 공부를 멈추고 막내 돌봄에 나섰다. 박씨는 "임신 때부터 아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올해는 아이가 행복하게 잘 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꾸준히 어려움을 토로해 온 지방의 의료현실은 다둥이가정에 더 큰 현실적 어려움이다. 이전에도 아이가 아프면 소아과가 없는 의령군을 벗어나 1시간 거리의 진주나 창원까지 나가야 했다. 정밀진료가 필요한 막내를 위해서는 부산대학병원이 있는 양산까지 가야 한다. 일정 부분 생업을 멈추면서까지 육아에 전념하는 부부이지만 "아기의 아픔은 특히 더 힘든 부분"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자리를 잡은 의령군은 전국 59곳의 인구소멸 위기지역 가운데 4번째로 위험도가 높은 곳이다. 전남 신안군, 인천 옹진군, 경북 울릉군에 이어 최선두권이다. 2만5000명 남짓한 의령 인구 중 청년(19~39세) 인구비율은 9.3%다.
부부는 의령을 "좋은 물과 좋은 공기,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서도 "10명을 키우는 데 당연히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10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음에도 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 않은 셈이다.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는 둘째 예아(18) 역시 미술을 배우러 주말마다 진주까지 왕복 중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섯째 예권이(13)는 단 5명의 학우와 6년을 보냈다. 어머니 이씨는 "같은 학년 전교생 5명 중에 유일한 남자아이로 학교를 마쳤다"며 "다행히 집에 형제자매가 많은 만큼 외로움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라에서도 지역소멸과 저출산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셋째 예훈이(17)를 가질 당시만 해도 지원은 전무에 가까웠지만 넷째 예한이(15)가 태어난 때부터 출산장려금 제도가 시작됐다. 여덟째 예후(5)부터는 의령군에서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도 1000만~1300만원까지 늘어났다. 영·유아기로 한정했던 지원기간 역시 올해부터 취학 후 18세까지로 늘어난다.
다만 의료인력 배출이나 교육여건 개선 등 중장기계획에 포함된 내용들은 체감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 박씨는 "정주여건은 100%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의료나 예·체능 계열 교육시설까지 교통 등 지원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남매 가족밴드, 의령에선 스타
그럼에도 10남매 가족은 서로를 의지하며 화목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활동을 했던 아버지 박씨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부터는 가족 모두 악기 한 가지씩을 맡아 밴드를 결성했다. 지금은 의령군에서 1년에 4번 고정으로 무대를 서는 어엿한 '음악가 가족'이다. 아버지 박씨의 저출산 관련 강의에서 깜짝 공연을 맡았을 때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부부는 "나를 닮은 생명이 나와 함께 산다는 것,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며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코 알 수도, 표현할 방법도 없는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큰 사춘기 없이 성장한 것 역시 언제든 10명의 친구를 찾을 수 있어서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정체가 외계인이라고 말하던 둘째의 사소한 반항을 빼면 대학생부터 갓난아이까지 10명의 아이 모두 구김 없이 자라는 중이다.
어머니 이씨의 고민은 아이들의 성격보다 식성이다. 라면을 한 번 먹으려 할 때조차 최소 4차례는 냄비를 갈아야 한다. 아버지 박씨는 "뭐든 한번 먹으려면 분식집 사장이 돼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박씨는 인구소멸 지역에서 다둥이를 키우는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12월 경남 인재개발원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저출산 극복사례:답은 현장에 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그는 경남 인구정책 실무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