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수만큼 부모에 연금 혜택… 저출산 해결 도움될 것"
2024.01.28 18:56
수정 : 2024.01.28 20:51기사원문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국가로 공적연금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르게 생각한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수많은 서구 선진국보다 긍정적이다. 독일, 미국 같은 당해년 부과식(pay-as-you-go)에 비해 한국은 많은 연금유보금을 가지고 있다. 또 연금 가입자의 구성에서 오는 리스크에 대비할 시간이 아직 있다. 현재 독일은 약간의 유동성기금만 존재하고 연금충당금이 없어서 당해년 연금지급액 부족분을 매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미 청년세대에 많은 짐을 지우고 있고 앞으로도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은 국민연금이 막대한 유보금을 가지고 있어서 적절한 자산운용으로 기금 고갈 시기를 많이 늦출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국내외 주식·채권·대체투자를 통해 신중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의 저출산이 지속되면 한국도 언젠가는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시기가 오겠지만, 유보금을 잘 운용해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매년 공적연금 기여금과 지불금이 일치하고 있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30% 정도의 연금지불금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노동자와 고용자가 임금의 9%씩을 연금기여금으로 내고 있다. 세금으로 연금 부족분을 지급하는 것은 장기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청년의 노동의욕이 꺾이고 사회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최근 연금수급 연령을 늦추고, 미국도 사회보장연금 수령 시기를 자발적으로 늦추는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공적연금 안정성을 위해 연금혜택을 줄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수명이 늘어나서 연금혜택을 받는 기간이 늘어난 만큼 수혜 시기를 늦추는 것도 상대적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인기가 없어서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 중장년·노년층 인구가 많아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높은 시기에는 더욱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다. 프랑스의 연금개혁이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 한 예이다. 오히려 앞으로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치세력이 연금혜택을 늘리는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유권자인 중장년층이 정치력을 이용해서 현재의 미성년 세대에 공적연금의 짐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연금혜택 수혜자인 중장년층과 연금재정 기여자인 청년층 간 세대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개인이 가입하는 사적연금이 공적연금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나.
▲사적연금은 공적연금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401(K) 플랜의 경우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사적연금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사적연금의 기본골격은 개인이 직접 연금계좌의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다. 금융상품 투자는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일반 시민이 직접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초창기 미국의 401(K) 플랜은 많은 사람들이 현금으로만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지식이 부족하고 일상생활에 바쁜 직장인들이 그들의 연금계좌를 직접 운용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생애주기 뮤추얼펀드 등을 기본옵션으로 제공, 일반 시민이 자신의 연금계좌 운용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적으로 연금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공적연금이 갖는 운용의 전문성, 공공안정성을 사적연금이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적연금은 공공연금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제공돼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공적연금 기여금의 일부를 개인연금 계좌에 넣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지 공적연금의 대체안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의 수년간에 걸친 출산장려 정책은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그중 한가지 이유는 사교육 등 자녀 양육에 드는 많은 비용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성인 자녀가 노인 부모의 생계를 지원했다. 노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자녀의 노동시장 가치 향상, 경제적 안정성, 본인의 노후안정성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국가 연금제도하에서는 본인이 자녀를 낳아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이웃이 자녀를 많이 낳아 연금기금에 기여하기를 바랄 수 있을 것 같다.
▲동의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경제적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비용과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이념적·문화적으로 성인 자녀의 노인부양을 강조하지 않는 사회에서 본인의 노후를 위해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현재 소비를 늘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자녀에 대한 투자가 점점 회수 불가능할 때는 아예 자녀를 갖지 않음으로써 투자를 원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적연금의 혜택을 본인의 기여금뿐만 아니라 자녀 수에 연동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수세기 동안 이어왔던 가정 내 자식·노부모 간 부양 관계를 현대 국가연금 시스템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훌륭한 생각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자녀 수에 따라 여성에게 추가로 노후 연금혜택을 지급한다. 가임기 여성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는 동안 연금포인트를 지급, 향후 받을 수 있는 연금액수를 늘려준다. 여성의 경우 본인 노후소득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녀 양육보다 직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노동시장에서 일하며 세금을 내지 않아도 자녀양육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다면 이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 자녀양육을 통해 다음 세대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여성에게도 노후를 보장해주자는 취지이다.
―재미있는 정책이다. 그 제도를 전체 인구로 확대해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은퇴 후 본인 소득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저출산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나. 생애주기 모델을 이용해 개인과 사회의 복리후생 효과를 계산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연구가 될 것 같다.
▲동의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최근 독일과 스위스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제언하고 있는 정책이 있다. 아이가 출생했을 때 5000유로(약 700만원)씩 지급해 베이비펀드 계좌를 만들고 65세까지 주식시장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률인 10%를 가정했을 때 65년 후 복리 수익률로 205만유로(약 36억원)를 가질 수 있다. 자녀가 태어났을 때 현금으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부모가 아이의 사교육에 투자하는 것보다 베이비펀드를 조성, 그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또는 아이의 노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이 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있다. 아이의 미래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 부모가 자녀의 교육투자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금융시장을 자녀양육에 연계하는 재미있는 생각이다.
▲금융경제학자로서 우리는 그 시장 자체를 이해하고 개선하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금융시장을 잘 이용하면 저출산, 연금재정의 안정성 등 많은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 가지 어려운 문제는 베이비펀드의 수혜자인 아이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투표를 할 수 없어서 현재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직접적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 실현에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베이비펀드뿐 아니라 부모펀드를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현재는 자녀 출산 시마다 현금을 주는 정책이 있지만, 자녀 수에 따라 부모의 은퇴계좌에 정부가 기여하면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다. '출산과 은퇴 안정성'이라는 오랜 사회유지 시스템을 다시 회복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유권자인 부모세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므로 정치인들도 시행하고 싶어 하리라 믿는다.
―한국은 국제공인수학시험(PISA)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국가별 평균 금융지식을 측정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금융지식 점수는 낮은 편이다. 이러한 제약사항이 사적연금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재무지식이 없으면 사적연금을 직접 운용하기가 아주 어려워지고 적절한 위험자산보다 무조건 안정지향적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향후 연금자산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베이비펀드로 아이가 본인의 연금계좌를 소유하면 일찍부터 금용지식을 쌓을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대담 = 김회광 美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경영대학 재무학 교수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