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찍어준 테마주"...이번에는 '저PBR주 광풍'
2024.02.01 18:25
수정 : 2024.02.01 18:2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회사가 가진 것(자산)만큼도 시장에서 평가(시가총액)를 받지 못하는 상장사가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실제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은 투자 기피 대상이었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잘못됐거나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저PBR주의 반전 드라마
그러나 분위기가 반전됐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보험지수는 7.14%, KRX 증권지수는 6.32%, KRX 은행지수는 5.27%, KRX 자동차지수는 3.80%으로 강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 전체 상승률 1.8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종목별로도 흥국화재가 상한가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 등이 상승률 상위에 포진했다. 여기에 동국홀딩스, LG, 롯데지주, JB금융지주 등 지주사 역시 상승률이 10%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모두 PBR이 낮은 종목으로 꼽혀 왔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청산가치라고도 한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말은 회사가 보유자산을 전부 매각하고 사업을 청산할 때보다도 더 낮게 현 주가가 형성된 상태라는 의미다. 금융과 보험, 지주사 등이 대표적인 저PBR 업종으로 꼽힌다.
PBR 1배 안 되는 코스피..."일본처럼"
저PBR주가 갑작스럽게 강세를 보이는 건 정부가 이달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한 영향으로 보인다.
신한투자증권 노동길 연구위원은 "코스피는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주 저PBR 업종 주도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은행, 증권, 보험, 상사(지주), 자동차, 화학 등 저PBR 업종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 비교공시 시행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다.
우리나라 코스피의 평균 PBR(확정실적 기준)은 0.91배로, 지난 2022년 6월 이후로 1배를 넘어선 적이 없다. 심지어 하향 추세여서 이대로 두면 1배를 넘기는커녕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의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배 이하 상장사에 자본 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침을 세우라면서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상장폐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도쿄증권거래소가 발표한 참여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PBR 1 이하 공시 대상기업 3300여곳 중 1115곳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주주를 위한 경영 개선계획을 적거나 적을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PBR이 낮은 기업일수록, 또 시가총액이 큰 대형사일수록 참여도가 컸다. 특히 대표적 저PBR 업종인 은행주들이 94%로 대부분 참여했다.
"이것마저 테마주가 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 프로그램의 효과는 미지수다.
문제는 저PBR주가 하나의 테마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내내 50만원대를 유지하던 태광산업 주가가 최근 약 일주일간 55% 급등하며 장중 90만원을 찍었다. 지난해 4월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걷던 제주은행도 같은 기간 40%가 넘게 급등했다. 저PBR 종목으로 언급되면서다.
개별 정책 발표가 있을 때마다 주가가 요동치는 등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매도 금지가 발표되고, 자사주 제도 개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나 단기적인 움직임에 그쳐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안영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저평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가 PBR이기 때문에 저PBR주에 큰 관심이 쏠린 것 같다"며 "하지만 PBR이 낮다고만 해서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여느 테마주와 다를 바 없다. 그 중에서 주주환원책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기업들을 선별해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일본에서 저PBR주에 대한 정책이 시행되면서 증시 호황이 찾아왔지만, 전문가들은 일본만큼 증시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문제는 낮은 ROE로 이는 저성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며 "전반적으로 성장이 정체돼 있고 일부 산업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기 때문에 낮은 ROE로 저평가가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성장을 통해 이익 창출 능력이 담보돼야 배당도 늘리기 쉽다"고 설명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