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빅데이터, AI 그리고 정책
2024.02.01 18:33
수정 : 2024.02.01 18:33기사원문
2000년 이전만 해도 길을 찾을 때 지도는 없어서 안 될 물건이었다. 그런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내비게이션이 생겨나면서 지도 만드는 생산업체는 사라져갔다. 그 대신 내비게이션 관련 여러 업종이 생겨났다. 만일 2000년 초반 지도업체를 생각해서 '내비게이션금지법'을 만들었으면 어찌 되었을가. 우리가 내비게이션을 기반으로 공간정보산업을 창출해서 세계를 주도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인 국민도 훨씬 불편했을 거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집단지성을 활용하면 거래 당사자 간 직접 거래가 가능하다. 법률서비스도 온라인으로 신속하게 풍부한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역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아직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길게 보면 이해 당사자들의 터전이 없어지기보다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소비자인 국민이 받을 혜택 또한 엄청날 것이다. 이런 집단지성과 빅데이터, 나아가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의 기초는 각종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이들 정보 중에 공공정보가 핵심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회 그리고 공공기관들이 갖고 있는 정보는 실로 활용가치가 큰 것들이 많다. 그래서 과거에는 '정부 3.0', 지금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정보를 민간에서도 활용하게 되면 가계와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주체들의 삶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건강보험자료를 활용한 국민건강증진 사업이나 고용보험정보를 활용한 직업능력개발 사업 등 새로운 시장이 생겨날 수 있다. 한편 민간정보의 공적 활용도 가능하다. 전기나 신용카드 사용 등과 같은 정보를 활용하여 실시간 경기동향 분석과 신속대응책 마련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빅데이터와 AI를 기초로 재판 과정에서 형량 결정도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재판에서 선고되는 형량을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양형위원회에서 설정하는 양형기준에 따라 재판부가 형량을 선고하지만 재판부가 당시 여론과 상황에 따라,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그리고 시대별로 달라지는 양형판단에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그동안 선거법상 '100만원 이상' 선고이면 의원직 상실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았다. 의원직 상실의 기준을 왜 금액으로 정했고, 또 그 금액 판단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범죄경제학(Economics of Crime)은 경제원리를 적용하여 범죄행동, 법 집행 그리고 형법체계를 분석하는 분야이다. 최근 양형 결정과 관련된 연구도 많다. 양형 관련 기준을 계량화하여 재판부 그리고 검찰이 양형을 이 기준에 맞춰 결정하는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범죄 유형, 범죄 형태, 주범·공범 여부 등 피고인 역할, 전과 사실이나 정상참작 요소 등과 같은 피고인 특성 등을 기초로 양형기준을 설정한 뒤 이와 관련된 그동안의 대법원 확정판결 결과의 자료를 빅데이터화하여 관련 피고인의 선고형량을 1~2년 내 범위로 도출한다.
물론 이러한 형량 결정방법은 재판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빅데이터 기반으로 산출되는 형량 범위를 참고하여 선고하되, 이를 벗어나면 사유를 밝히는 식이 되면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오히려 재판부 판단의 근거를 합리화할 수 있게 되어 재판부가 여론에 따른 영향 혹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다.
이제는 빅데이터와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기초로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 가는 시대이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