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 전격교체..."부친이 정책 개입" 소문에 낙마

      2024.02.04 07:32   수정 : 2024.02.04 07:3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하피제 게이 에르칸 튀르키예 중앙은행(TCMB) 총재가 전격 사임하고 그 자리를 에르칸보다 더 강경파인 하티 카라한 부총재가 맡았다. 튀르키예 금리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한편 에르칸 총재는 부친이 중앙은행 업무에 개입한다는 소문 속에 낙마했다.



새 총재 후보는 미 뉴욕연방은행 출신 정통 이코노미스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에르칸 총재가 2일(이하 현지시간) 사임하자 그날 밤 후임으로 카라한 부총재를 지명했다.

2019년 이후 5년 동안 숱하게 물갈이 된 TCMB의 여섯번째 총재다.


새 총재 지명을 받은 카라한 부총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정통 경제학자로 뉴욕연방은행에서 10년 가까이 일했고, TCMB에 합류하기 직전에는 아마존에서도 일한 바 있다. 뉴욕연방은행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12개 지역 연방은행 가운데 핵심으로 월스트리트 금융시장과 연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카라한 총재 지명자는 거시경제, 노동경제학 전공이다.

반면 전격 사퇴한 에르칸은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은행의 복잡위험관리 모델 개발이 전공분야다. 중앙은행 총재 업무와는 거리가 있다.

후임 카라한은 일단 전문가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TCMB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하칸 카라는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카라한을 전문가로 잘 안다"면서 "카라한은 TCMB 내 존경받는 전문가"라고 말했다. 튀르키예 민간은행 내에서도 카라한 지명은 '신뢰할만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의 정책 전환


에르도안은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자신의 비정통 경제정책을 폐기했다.

높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교리를 들어 금리인상은 안된다던 고집을 꺾었다.

에르도안은 지난해 6월 메릴린치 채권전략가 출신인 메흐메트 심섹을 재무장관으로 앉히며 정통 경제정책으로 회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심섹을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수일 뒤에 TCMB 총재로 지명한 인물이 이번에 전격사퇴한 에르칸이다.

에르칸, 인플레이션 억제에 집중


에르칸이 총재가 된 뒤 TCMB는 대대적인 금리인상에 나섰다. 8.5%였던 기준금리를 45%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아울러 인플레이션과 대출증가를 잡기 위한 일련의 조처들을 취했다. 달러와 금 대신 튀르키예 리라를 보유하도록 시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환율전쟁에 대비한 TCMB의 외환보유액 확충이다. 튀르키예 외환보유액은 말도 안되는 저금리 정책으로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지난해 5월 480억달러 규모로 쪼그라들었던 TCMB의 외환보유액은 에르칸 취임 반년이 조금 지난 지난해말 850억달러로 대폭 늘었다.

'아그발 충격' 되풀이 안될것


에르칸이 중앙은행 통화정책을 관장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튀르키예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가운데 하나인 핌코는 지난달 FT에 리라 표시 채권을 다시 매수하기 시작했다면서 5년 안에는 튀르키예 국가신용등급도 투자등급으로 복귀 할 것으로 낙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르칸 전격사퇴가 일부에서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아그발 충격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그발 충격'은 2021년 에르도안이 금리인상에 대한 불만으로 명망있는 총재 나치 아그발을 한 방에 날려버린 뒤 리라가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뒤흔들린 사건을 말한다.

초기이기는 하지만 에르칸 사퇴가 아그발 충격을 재연하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이 지배적이다.

금리인상 속도 빨라질 수도


JP모건 튀르키예 담당 이코노미스트 파티 아크첼릭은 "갑작스러운 (중앙은행) 수뇌 교체가 투자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후임 총재 역시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하강)과 리라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아크첼릭은 아울러 새 총재 지명자인 카라한이 TCMB내 금리인상 강경파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에르칸때보다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가족 개입 소문이 치명타


에르칸은 2일 총재 자리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자신에 대한 '중상모략 '을 이유로 댔다.

사상 첫 여성 TCMB 총재가 된 에르칸은 취임 수주일 뒤 소문에 휩싸였다.

TCMB 출신 인사가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에르칸의 부친이 중앙은행 정책에 비공식적으로 간여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지난달에는 야당 의원들이 심섹 재무장관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에르칸은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이를 부인했고, 에르도안 역시 최근까지도 에르칸을 지지했다.


그러나 소문 진위와 관계없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자 결국 에르칸 카드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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