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도입했던 엘살바도르 부켈레, 재선 성공
2024.02.05 15:35
수정 : 2024.02.05 15:3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2021년에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인정했던 중미 국가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현지 유권자들은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부켈레가 치안을 극적으로 안정시켰다며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범죄와의 전쟁' 벌이며 비트코인 도입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4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함께 치렀다.
수도 산살바도르 시장 출신인 부켈레는 2019년 당시 37세의 나이로 우파 성향의 국민통합대연맹(GANA)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해 역대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태평양에 접한 엘살바도르는 경상도만한 넓이에 약 637만명이 살아가는 국가로 환태평양조산대에 끼어있는 바람에 활화산만 23곳이 솟아있는 척박한 땅이다. 스페인의 식민지 생활을 거쳐 1841년에 공화국이 들어섰으며 1960년대까지 커피 농업으로 성장했으나,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좌우 내전을 겪었다. 엘살바도르의 치안은 오랜 내전으로 국가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온갖 마약 조직이 창궐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부켈레는 취임 직후 마약 조직과 부패 척결에 집중했다. 그는 2022년 3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마노 두라(철권통치)’ 작전을 시작하여 약 2년에 걸쳐 7만5000명이 넘는 폭력배를 체포했다. 이어 경찰에게 일단 조직폭력배로 의심되면 영장 없이 체포하도록 지시하고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남동쪽으로 약 74㎞ 떨어진 테코루카에 미주 최대 규모의 교도소를 신설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테러범 수용 센터'는 여의도 절반 크기에 약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온두라스 등 이웃 중남미 국가들도 엘살바도르를 본받아 조직폭력배가 장악할 수 없는 대형 교도소 건설에 나섰다. 그 결과 2015년 인구 10만명당 105.2건에 달했던 엘살바도르 살인율은 지난해 2.4건으로 크게 떨어졌다.
또한 부켈레는 2021년 9월에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면서 국고를 동원해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엘살바도르의 경제는 미국 달러를 법정 통화로 사용할 만큼 불안했고 이에 부켈레는 비트코인 투자로 재정마련에 나섰다.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투자 손익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나이브트래커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투자액은 부켈레의 임기 초중반에 큰 타격을 입었지만 4일 기준으로 투자액 대비 1% 안팎의 수익을 보고 있다.
인권 탄압 및 독재 우려도 있어
외신들은 이번 선거 전에 이미 부켈레의 승리를 예상했다. 현지 유권자들은 범죄를 해결한 부켈레에 열광했으며 그의 지지율은 지난달 20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79%에 이르렀다. 나머지 후보들의 지지율은 각각 1∼4% 수준에 불과했다. 부켈레는 투표 전 기자회견에서 "경제 발전, 빈곤율 감소, 치안 안정화가 국정 운영의 핵심 목표"라며 2기 정부에서도 기존 정책을 유지한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부켈레에 대한 비난 또한 적지 않다. 그는 조직폭력배 소탕 작전을 벌이면서 구금 중 사망과 고문, 일반인에 대한 무분별한 체포, 영장 없는 가택 수색 등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부켈레가 편법으로 재선에 도전했다는 비판도 있다. 엘살바도르 헌법에는 6개월 이상 대통령으로 재임한 사람이 10년 안에 다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연임 금지 조항이 있다. 부켈레는 2021년 자신과 우호적인 대법원 헌법재판부로 부터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휴직하면 재선은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받아냈다. 동시에 임기 만료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1일에 국회에서 휴직 승인을 받아 휴직에 들어갔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부켈레가 개헌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썼다고 비난했다.
소셜미디어의 소개글에서 자신을 '독재자'라고 적었던 부켈레는 지난해 8월에 자신이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라며 문구를 바꿨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 대신 철인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과두정이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주장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