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 12년...무엇을 잃고, 얻었나 (2화)

      2024.02.08 06:00   수정 : 2024.02.08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니가 밥 먹는 게 꼴보기 싫어졌어."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봤던 '또! 오해영'이란 드라마의 대사다. 결혼 식 전날 한태진(이재윤 배우)은 오해영(서현진)에게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로 이별을 고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감옥에 들어갈 예정인 한태진이 그가 사랑한 상대(오해영)의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해 일부러 '위악'을 행한 것이다.

그로서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해 오해영은 평생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받는다.

다양한 정부 부처와 산업영역을 출입하면서 때때로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가 만든 법률과 제도도 한태진의 '위악'처럼 당초의 의도나 목적과 반대로 작동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지난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는 주거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해 임대차 3법을 추진했다. 전세 의무 계약 기간을 최소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을 5%로 제한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의 '선한 의도'와는 반대로 집을 가진 집 주인들은 법 시행에 앞서 미래에 잃게 될 임대료 상승분을 한 번에 반영해 버렸고, 전셋값은 폭등했다.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높은 전셋값을 내고 살아야 했다. 전셋값이 오르자 집값 역시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전통시장 상인의 보호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도 비슷한 경우다. 대형마트의 야간 영업을 제한하고, 매달 주말 2회 강제 휴무를 규정한 이 법은 대형마트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하고, 상대적 약자인 전통시장 상인 보호를 위해 2012년 제정됐다. 하지만 막상 법을 시행하고 보니 대형마트의 강제 휴무로 인한 반사 효과는 전통시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직장인 다수가 주말을 이용해 대형마트에 쇼핑을 갔는데 의무 휴무로 인해 헛걸음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해당 규제는 '법률'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편과 불합리에도 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국민제안 투표 1위였던 '의무휴업 폐지'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일종의 온라인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이 직접 투표한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1만3000여건의 민원 중 10가지를 추리고 이 중 투표를 통해 상위 3가지는 정부의 정책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투표 결과 생활경제 분야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좋아요' 57만7000여표를 얻으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놓고 중복투표 허용 등 시스템 상의 문제가 지적됐다. 정부는 당초의 말을 바꿔 "국민제안이 바로 정책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1위라고 해서 바로 정책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해 국민의 투표도, 규제로 인한 부작용도 개선 없이 공염불이 되고만 것이다.

2012년 이후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규제는 정부가 아닌 지자체에서 먼저 움직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시민불편 해소를 위해 지난해 2월 13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인 월요일로 변경했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대형마트가 문 닫는 날을 '주말'에서 '평일'로 변경한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에서 규정한 '의무휴업일 지정은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 등이 매달 두 번 이해당사자 협의를 통해 공휴일이 아닌 날로도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해 기준 대형마트가 있는 지자체는 전국 177곳에 달했다. 이 중 118곳이 의무휴업일 이틀이 모두 일요일이었다. 대구시에 이어 충북 청주시, 경기도 지자체, 울산, 제주도 등 60여곳의 지자체도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시행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 서울 서초구는 1월 28일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했다. 동대문구도 2월부터 주말 영업을 허용할 예정이다. 법률 개정이 쉽지 않은 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타다' 사태와 겹쳐 보이는 '유통산업발전법'

국토교통부 출입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2018년 출시한 차량공유 서비스 '타다'가 시행되고 인기를 끌었다. 11인승 승합차를 활용해 기사의 목적지 확인 없이 자동 배차되고 기존 택시 서비스와 달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타다 서비스를 이용한 동료 기자 몇몇은 "택시처럼 승차거부가 있지도 않고, 기사님이 피곤할 때 말을 걸어 와 이에 대꾸하거나 하는 일도 없어 좋다"고 말했다. 현재의 카카오모빌리티 서비스의 앞선 버전이었던 셈이다. 택시보다 20% 정도 요금이 비쌌음에도 만족도가 높아 이용자수는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타다 서비스가 확대되자 기존 택시단체들이 반발했다.

타다가 렌터카의 유사여객운송을 금지하는 여객차운수사어법을 위반한 서비스라는 것이었다. 국회와 정부는 합심해서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토부는 주택정책, 교통정책을 총괄하는 차관 2명이 있는데 당시 차관은 '타다 금지법' 통과에 대해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뒤 교통정책을 총괄했던 해당 차관은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로서는 수많은 택시 기사들의 표를 잃을 수 있는 '타다' 서비스를 막는 것이 당선에 도움이 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국민의 편의보다 어쩌면 택시 기사들의 표를 잡기 위한 선택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난해 6월 대법원은 '타다' 서비스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위법하지 않은 서비스였지만 이미 타다 서비스는 사라진 뒤였다.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의 경우도 제정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법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법 개정 사안인 만큼 해당 법을 개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7~8년 전 생활경제부에 속했을 당시에도 실효성에 의문이라는 기사를 썼었는데 지난해 3월 다시 생활경제부에 돌아와서도 똑같은 비판이 지속되고 있었다. 지난해 4월 18일 [포퓰리즘에 12년째 낡은 규제… "배송 제한 족쇄 풀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해당 기사는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강제 휴무를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12년째 바뀌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정치권이 대기업(대형마트)과 소상공인을 대립하는 경쟁관계로 부각시키고 갈등을 조장해 '표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1월 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고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다시 밝혔다.
의무휴업 공휴일 지정 원칙을 삭제해 휴무일을 평일로 전환하고, 지역의 새벽배송이 활성화되도록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시간 온라인 배송도 허용하는 게 골자였다.

총선이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드라마 '또!오해영' 속 주인공처럼 상처 받지 않으려면 난무하는 공약 속에서 무엇이 '위선'이고 '위악'이고 '진짜'인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시해야 한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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