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산호에 산업오염 흔적이 그대로
2024.02.09 10:31
수정 : 2024.02.09 10:3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바닷속 산호가 인류의 산업 발전 역사를 추적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해외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산호의 석회질 골격 안에 화석연료를 연소할 때 날리는 '비산회(fly-ash)' 또는 구형 탄소질 입자(SCP)가 담겨 있어 그 정도에 따라 산업발전의 증가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나무 나이테로 과거 기후변화를 알 수 있듯이 산호로 인류의 산업발전 정도를 측정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9일(한국시간) 국제 학술지 '종합 환경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루시 로버츠 지리학 박사팀이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만들어 낸 오염물질이 바다 밑에 있는 산호에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루시 로버츠 UCL 지리학 박사는 "산호의 석회질 골격 안에 포함된 이 오염물질의 발견은 수십 년에 걸쳐 인간의 영향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명확하게 보여준다"며 "이는 우리가 산호에서 이러한 오염물질을 처음으로 본 것이며, 이것이 해당 지역의 화석 연료 연소의 역사적인 속도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산호는 대부분 대규모로 집단 서식하는 작은 자포동물로, 주변 물에서 SCP 오염물질을 섭취하면서 그들의 석회질 골격을 성장시킨다. 산호의 석회질 골격은 측정 가능한 성장 속도로 인해 기후 연구에 자주 사용되는 자연 기록 보관소다. 또 나무 나이테처럼 산호의 긴 수명과 느리고 규칙적인 성장은 과학자들에게 과거의 연간, 월간, 주간 환경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산호는 지금까지 주로 수온이나 화학적 성질 같은 과거 기후 조건을 측정하는데 사용돼 왔다. 하지만 연구진은 미세플라스틱 이외의 오염물질을 처음으로 산호에서 찾아냈다.
연구진은 지중해의 컬럼브레트 군도(Columbretes Islands) 근처 일라 그로사 만(Illa Grossa Bay)의 산호에서 화석연료 연소로 발생한 탄소 입자를 발견했다. 비산회나 SCP가 자연 퇴적물에서 발견되는 것은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인류세의 시작을 나타내는 역사적 표지로 간주된다.
또한 스페인 국립 연구 위원회(CSIC) 소속의 토레 데 라 살 어류연구소(IATS) 연구진은 스페인 카스텔로 해안의 산호에서 샘플을 수집해왔다. 돌산호의 일종인 클라도포라 세스피토사(Cladocora caespitosa)에 대한 연구 및 모니터링을 20년 동안 해왔으며, 이 지역은 세계적인 변화 감지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호는 해안으로부터 60㎞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해양보호구역 내에 있어 지역적인 오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산호는 대규모 산호초를 형성할 수 있는 지중해 유일의 산호이며, 연간 약 0.3㎝씩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UCL 연구진은 산호를 분석하기 위해 산성으로 용해시켜 석회질 골격에 있는 모든 오염 물질을 분석했다. 먼저 현미경으로 용해된 석회질 골격 잔해 속에서 모든 SCP를 세어봤다. 또한 화석 연료나 석유 발전소에서 나오는 SCP 오염의 화학적 특징을 찾기 위해 X-선으로 분석했다.
그결과 이 산호에서 약 1969~1992년 사이에 SCP 오염도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 시기는 유럽이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었고, 석탄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오염도를 분석한 결과는 스페인 산악 호수에서 수집된 SCP 오염 측정과 일치했다. 이는 산호가 연도별 오염 수준의 변화를 측정하는 자연적인 기록 보관소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이같은 발견은 과학자들이 지질학적 시간의 단위인 '인류세'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도구를 찾고 있는 시기에 나온 것"이라며, "지구 역사상 인간 활동이 지구의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력이 된 가장 최근 시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