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아들·딸 70명' 김미경 "'삼달리' 진상 세 딸들, 너무 좋아" ②
2024.02.11 07:30
수정 : 2024.02.11 07:30기사원문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를 시작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김미경, 그는 요즘 다수의 작품에서 인자하고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도맡으며 김혜자의 뒤를 잇는 '국민엄마'로 불리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는 사고뭉치 세 딸을 키우면서 제주 바다를 주름잡는 해녀 엄마로,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는 아들을 앞세워 보낸 엄마의 슬픔을 그리며 시청자들의 '눈물버튼'이 되었다. 삼달이, 이재 및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모은이의 어머니이자 시청자들에게도 '엄마'로 불리고 있는 김미경.
그는 엄마가 아닌 역할이면 다 좋다고 웃으면서도, 어느덧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엄마' 배역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연기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김미경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N인터뷰】①에 이어>
-그동안 드라마에서 만난 자식이 몇명 정도 되나. 기억에 남는 자식이 있다면.
▶내가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70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먼저 간 자식들이 생각이 난다. 자식 보내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무너진다. '고백부부' '하이바이마마' '이재 곧 죽습니다'가 그랬다. 자식(배우)들과는 서로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기는 어렵지만 종종 여유가 생기면 집에 오거나 밖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있다. 서로 응원해주고 있다.
-'삼달리'의 세 자매는 어땠나.
▶어우 진상들.(웃음) 이 친구들이 성격이 너무 좋다. 우리는 현장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이 촬영했다. 정말 너무 즐겁고 신나게 연기했다. 신혜선씨도 활달하고 신동미라는 친구는 말할 것도 없이 분위기 메이커다. 막내까지 셋 다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해녀들과는 땡볕에 고생들을 많이 해서 전우애가 생겼다.
-제주도 사투리를 해야 했는데.
▶예전에 '탐나는 도다'에서 해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완전 고증한 사투리여서 자막까지 필요할 정도였다. ('삼달리'는) 서울에서 내려간 인물이니까 제주 사투리를 많이 안해도 되는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사투리를 거의 안 쓴다고 하더라. 우리도 제대로 쓰는 건 시청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만 연기했다.
-유오성과의 연기는 어땠나.
▶유오성 배우는 연극하던 1985년부터 알던 사이다. 그 친구도 나를 알고 나도 그 친구가 연기하는 걸 안다. 둘의 장면을 보면서 이거는 재미있게 찍겠다 싶었다. 기대와 욕심이 생기더라. 유오성씨가 워낙에 연기를 잘하셔서 서로 호흡을 주고 받는 게 잘 됐던 것 같다.
-삼달(신혜선 분)과 용필(지창욱 분)의 사랑이 이뤄지면서 상태와의 갈등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양가의 부모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앙금을 풀더라.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부모 세대의 갈등이 결자해지 되어야 두 아이의 미래가 결정이 되지 않나. 부모 때문에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풀어낼 수 있어서 대본에 고맙더라. 우리 이야기 없이 넘어갔더라면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닌 두루뭉술 넘어갈 것 같더라. 정면으로 부딪쳐서 해결하고 용서하는 걸로 전개 되더라. 부미자를 잊지 말고 품고 가자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답이 아닌가 싶더라.
-과거 엄마 역할을 할 때와 요즘은 대본이 어떻게 다른가.
▶엄마로서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은데 배경이나 설정이 다른 점은 있다. 이를테면 요즘 '전원일기'를 재방송을 해주더라. 김혜자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경이로울 정도로 어쩌면 저렇게 우리 엄마처럼 연기를 할 수가 있지, 찰나의 순간도 호흡을 안 놓치는 게 너무 대단하시더라. 그걸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 반성도 한다. 그때 시대를 보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웠고 남녀가 너무 다르게 나온다. 나도 예전에 엄마를 연기하면 '너는 여자가 그게 뭐냐' 그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면 요즘에는 아들에게 '너 그러다가 마누라한테 쫓겨놔' 라고 한다. 그런 시대적 변화가 확실히 있다. 엄마가 가져야 하는 모성애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는 건 많이 없다.
-최고의 남편 역할은 누구였나.
▶나는 주로 홀어머니인 경우가 많았다.(웃음) '삼달리'에서 서현철씨와는 너무 재미있게 연기했다.
-위기도 있었나.
▶1985년에 연극을 시작하고 바쁘게 살다가 4년 정도 지나서 슬럼프가 왔다. 연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면서 내가 연기를 해야할까 말까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혼자서 고민도 했는데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하나 하나 부딪치고 경험하고 깨지면서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다시 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배우면서 했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무대에서 까불었다면 터득하고 공부하면서 연기를 하게 된 때였다.
-다작 행보다. 힘들지 않나.
▶그걸 즐긴다. 내가 탈진이 될 때까지 일을 한 다음에 '이제 스톱' 명령이 내려오면 잠깐의 텀 동안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거다. 그렇게 해소하고 스트레스 풀고 다시 달리는 거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이제는 놀아야 할 시간이다. 한 달 정도 시간이 되는데 다이빙도 하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 할 수 있다.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내가 감히? 요즘 청춘들이 얼마나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데.(웃음) 음,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쉽게 무너지지 말고 너무 무리 지으려고 하지 말고. 여러 사람 안에서 목소리 내지 말고 나 혼자서도 당당하게 자존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라는 의미다. 내가 강하고 자존심을 가지면 남을 해할 일도 없고 위축될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