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난 인원에 영하 15도 야외근무… "그래도 살아남아 안도"

      2024.02.12 18:25   수정 : 2024.02.12 18:25기사원문

한국의 전체 주택 거주자 중 64%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통계청·2022년 기준). 아파트는 관리인력을 고용해 운영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특히 아파트를 지키는 보안요원은 '경비원'이라는 직책으로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명찰을 달았지만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까다로운 민원을 감내하는 것은 일상이지만 잇따르는 경비원 감축 추세는 더 큰 불안요소로 꼽힌다. 파이낸셜뉴스는 동행취재를 통해 이들의 일상을 살피고 대안을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4일 오전 7시. 서울 대치동 선경아파트 경비원 A씨의 하루는 인수인계로 시작한다. 전날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지만 집을 비우는 등 공유할 내용이 있으면 확인해둔다. 강남 아파트 특성상 좀도둑들의 표적이 될 우려가 있어서다. 쌓인 우편물을 비워두고 집 앞 신문을 거둔다.

■"담당라인 2개로 늘어"

전달사항은 올해부터 두 배로 늘었다. 경비원이 76명에서 32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 결과다. A씨는 "담당라인이 1개에서 2개로 늘어나면서 아무래도 업무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주민 입장에서 수십명의 보안요원 인건비는 적지 않은 요소다. 인건비 부담과 첨단 보안서비스가 맞물리면서 앞으로도 경비원을 감축하는 아파트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대근무자를 보낸 A씨는 초소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 아파트 마당 청소에 나선다. 겨울엔 청소할 게 많지 않지만 눈이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A씨는 "평소엔 괜찮지만 폭설이라도 오면 쌓인 눈을 쓰는 게 주업무가 된다"며 "외제차가 많은 아파트 특성상 빙판길이 되면 곤란해진다"고 했다. A씨는 이날 담배꽁초를 정리하고 낙엽을 쓸었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구축 아파트 특성상 차를 밀어야 할 때도 많다고 한다. 외제차는 아예 바퀴가 굴러가지 않아 힘을 써야 하고, 사이드브레이크가 체결돼 있는 경우 빨리 연락해 해결해야 한다.

마당 청소를 끝낸 시간은 오전 9시. 이때부터 30분씩 밖에 서서 근무한다. 이 또한 경비원 수가 줄어들면서 생긴 변화다. 주민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고육책인 셈이다. 검은색 유니폼 위에 엑스자 반사판이 붙은 형광주황 조끼도 새로 지급됐다. 중간중간 주민과 택배기사가 오면 라인 입구 현관을 열어줘야 한다. 택배기사가 어느 세대에 배달 가는지도 체크한다.

■바깥근무 서자 5분 만에 오한

기자가 A씨와 함께 아파트 건물 맞은편에 섰다. 5분 만에 오한이 들었다. 춥지 않냐고 묻자 A씨는 "옷을 많이 입어서 괜찮다"고 했다. 영하 15도 가까이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는 경비원들 단체대화방에 '날이 춥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팀장의 메시지가 온다. 야외근무를 쉬엄쉬엄 서라는 암묵적인 지시다.

30분씩 두 번 밖에서 근무하니 점심시간이다. A씨는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두고 끼니를 해결한다. 식비가 부담돼 밖에서 사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오후엔 재활용품을 정리한다. 건물당 1개씩 배치된 재활용 공간은 작년까지 3~4명이 하루씩 돌아가며 담당했지만 인원이 줄어 미화원들의 업무로 바뀌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의 근무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 꼬박 24시간이다. 7시에 퇴근한 근무자와 2교대로 돌아가며 업무를 본다. 교대근무를 서는 경비원은 모두 60대 이상이다. 아파트가 한산한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취침시간이 있지만 꼬박 18시간을 일하고 받는 월급은 세전 250만원. 일이 많아진 대신 월급도 30만원 정도 올랐다고 한다.

■"잘 웃어야 하는 직업"

궂은 일보다 사람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경비는 잘 웃어야 하고, 말주변도 좋아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식구끼리도 까칠한 사람이 있는데, 이 많은 입주민 중에도 성격이 제각각인 건 당연한 일"이라며 "내가 잘못한 게 없어 보여도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에게는 철없는 가족, 손주라고 생각하고 잘 받아준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래도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면서 "명절마다 떡을 돌리거나 선물을 주는 주민도 있어 그럴 때 마음이 녹는다"고 전했다.

반면 배달기사, 택배기사와는 종종 부딪친다. A씨는 "나한테 왜 반말하냐고 언성을 높이는 청년이 있었다. 삭여야 하는데 안 될 때도 있다. 그래도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세상이 그렇게 됐다. 육체적인 것보다 마음에 상처가 된다. 경비 한다고 무시하나 생각이 들더라도 참아야지"라며 말을 흐렸다.

24시간 근무하지 않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잠자리가 불편한 점 때문에 자녀들도 이직을 적극 권유한다. 쿠팡물류센터에 지원해 보기도 했지만 뽑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인원이 감축돼도 여기 남았다는 사실로도 안도한다"면서 "더 편하고 돈도 적게 주는 직장이 있겠지만 그래도 여기 계속 남고 싶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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