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벗어났더니 팍팍해진 日살림살이
2024.02.19 15:21
수정 : 2024.02.19 15:21기사원문
【도쿄=김경민 특파원】일본이 장기 침체인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탈피하고 있는 과정에서 고물가로 인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모처럼 국가는 새로운 성장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물가가 뛰는 속도보다 임금 상승이 더뎌 일본인들의 현실 지갑은 더 얇아진 것이다. 국민들의 불만이 터지면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 언제 정권 교체가 이뤄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까지 왔다.
30년 인플레 모르고 산 일본인들 '화들짝'
19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물가가 3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일본 국민들이 식료품, 가전 등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 엔화 약세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고 있다.
일본 맥도날드는 지난달 24일부터 메뉴 전체의 약 30%에 상당하는 제품 가격을 10~30엔 인상했다. 전국의 약 3000개 전 지점에서 시행, 인기 버거인 빅맥은 450엔에서 480엔으로 가격이 올랐다. 일본 맥도날드가 전국 점포에서 일제히 가격을 인상한 것은 2022년 이후 4번째다.
코카콜라는 350ml 캔의 가격을 125엔에서 135엔으로 10엔 올렸다. 미닛메이드 오렌지 1L의 가격도 248엔에서 300엔으로 인상됐고, 과일 주스 트로피카나 250ml 가격도 120엔으로 10엔씩 올라갔다. 대부분의 음료 가격이 5~12%씩 증가했다.
또 프리마햄은 내달부터 햄, 소시지, 가공식품 등 약 130개 품목의 가격을 최소 3%에서 많게는 38%까지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외식 분야에서도 요시노야가 약 1년 만에 규동 가격을 인상해 보통 사이즈가 448엔으로 22엔 비싸졌다. 스시로 등 회전초밥 체인도 한 접시의 최저 가격을 110엔으로 5~10엔 인상한 바 있다.
닛케이는 "전기 요금 등도 올라 소비자들이 더 절약하고 있다"며 "개인소비 침체가 경기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밖에 산토리의 '싱글 몰트 위스키 야마자키 12년' 700mL의 1월 매입 가격은 1병에 2만4000엔으로 전년 동기대비 60%가 올라 과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간토 지역의 골프 회원권 가격도 코로나19 팬데믹 전보다 49% 높아졌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도쿄 도심 6구의 맨션 70㎡의 평균 가격은 1억995만엔으로 11개월 연속 최고치를 갱신했다.
"임금인상 성공해야 일본경제 선순환"
일본은 2년간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웃도는 사이클이 계속됐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임금은 지난해 12월까지 21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2년 연속 감소세이며 1.0% 감소했던 2022년보다 감소폭이 훨씬 크다.
국민 불만이 쌓여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14%(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까지 추락했다. 정부로서는 고물가 극복을 위한 지속가능한 임금 인상이 절실한 상태다.
내각부는 '2023년 일본경제보고서'에서 경제 선순환을 위해 검토해야 할 첫번째 항목으로 임금 인상을 꼽았다. 이어 △기업의 가격인상 추세 △물가 상승 확산 △기대 인플레이션 등을 들었다.
일본 정부와 경제계는 이미 임금 인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파격적인 임금 상승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기업의 호실적과 인재 영입 경쟁 심화, 일본 정부의 요청 등의 배경으로 임금 인상을 조기타결하겠다는 게 노사정의 의지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의 주요 자동차 업체는 물론 철강, 서비스업 등 산업계 전반에서 최근 춘투(봄철 임금협상)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사 모두 폭 넓은 임금 인상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타고 있다.
가네코 아키히로 자동차총련 회장은 "일본 경제를 견인하는 수준으로 임금 인상을 추진했으면 한다"며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비정규직이나 거래처로 임금 인상이 확산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은 기업이 선도해 올해 임금을 4% 이상 올려야 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이는 199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닛케이는 "양측이 임금 인상률 4%를 넘는 수준에서 합의한다면, 30년간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신호탄이 된다"고 평가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