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더이상 미룰 일 아냐
2024.02.19 18:26
수정 : 2024.02.19 18:26기사원문
그래도 여야는 여전히 느긋한 표정이다. 선거구 획정은 총선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자들에겐 자신이 뛸 '운동장 구역' 선긋기다. 특히 얼굴 알리기가 시급한 정치 신인들에겐 거의 절대적이다. 어느 지역·동네까지 선거구에 포함될지를 미리 정해주지 않으니 정치 신인들만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이쯤 되면 신인들에 비해 얼굴이 알려진 현역 의원이나 인지도 높은 각 당 지도부의 '미필적 고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번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련,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했다. 골자는 인구변동 등을 반영해 서울과 전라북도에서 각 1석을 줄이는 대신 수도권의 인천과 경기도에서 각 1석씩 늘리도록 했다. 하지만 여야는 서로 유·불리만 따진 채 티격태격하다 지금까지 두달이 넘도록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서로 유리한 지역구를 두고 '절대 밀리면 안 된다'며 양보와 타협 없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중앙선관위 선거구획정위의 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획정안 중 민주당이 비교적 우세지역으로 분류되는 경기 부천과 전북에서 각 1석씩 줄이면서 여당 강세지역인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그대로 두는 내용은 절대 수용 불가라며 맞서고 있다.
게다가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합치고, 강원 춘천을 갑·을로 분구하라는 획정위 안도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사실상 거부됐다. 이 역시 여야의 철저한 표 계산에 의한 결과물이다. 이렇듯 장기간에 걸쳐 합리적으로 마련된 선관위 안도 국회로 넘어가면 여야의 당리당략, 정치적 이해타산이라는 벽에 부딪혀 난도질당하기 일쑤다.
애초 필드에서 뛰어야 할 '선수'(정치권)에게 '경기 룰'(선거구 획정)을 맡긴 것부터가 잘못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먼저 정치권은 스스로 지난 2015년 법을 개정해 선거 1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 짓도록 한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스스로 법을 어겼으니 부끄러워 할 일이다. 이래 놓고도 창피함을 모른다면 유권자를 농락하는 꼴이다. 선거철만 되면 '참신한 정치 신인'을 등용해야 한다고 해놓고 정작 정치 신인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현역 의원 기득권만 누리겠다는 속내로 비칠 수밖에 없다.
최근 꼼수 위성정당 창당 논란을 불러일으킨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등 선거제도 룰을 선거구 획정에 앞서 매듭 짓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야가 서로 비례의석 수를 많이 가져가려고 비례제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다 보니 선거구 획정 논의가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이참에 아예 정치권의 입김이 닿지 않는 '제3의 독립기구'에 선거구 획정 전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여야 지도부는 이제라도 선거구 획정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 특히 4·10 총선을 통해 뽑힐 22대 국회부터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21대 국회 남은 임기 내에 정책대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haeneni@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