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옆 차박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오케이, 가자!"

      2024.03.22 08:34   수정 : 2024.05.03 11:24기사원문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블라디보스톡을 나와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다림이 길었던만큼 간절함이 더해져 모든 것이 예뻐보였다. 러시아를 달리면서 깨달은 것은 한국에서 내가 보아온 건 단지 '조각하늘'이었다는 것이다. 높은 빌딩도, 산도 거의 없어 고개만 들면 머리위 온통 버라이어티한 하늘이 펼쳐진다. 오른편에는 솜사탕같은 하얀 구름이 뭉개뭉개 떠있는데 왼쪽엔 맑은 하늘에 찬란한 석양이 지고있고 머리위 하늘을 보면 푸르름이 짙어가며 새털구름이 하늘을 수놓고있는 식이다. 드넓은 자연 속에 쭉 뻗은 도로를 드라이브 하는 기분이 마냥 좋다.


오후에 출발했기에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더 늦기전에 잘만한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행길에다 해외에서의 차박은 처음이라 어두워지기 전에 적당한 곳을 찾고 싶었다. 길 옆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발견하고 이곳이 어떨까 하고 들어가 보았다.

여행에 중요한 것에는 훌륭하고 대단한 유적, 신기하거나 아름다운 자연풍경, 좋은 날씨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 '누구와 갔는가', '누구를 만나게 되었는가'가 여행의 퀄리티를 좌우했다.


아무리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도 혼자 보고 즐긴다면 뭔가 아쉬웠고 반대로 그리 대단치 않은 장소에서 사소한 일을 한다해도 마음을 나누는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즐겁고 의미가 있었다.

사람을 만나기에는 큰 도시보다는 소도시나 시골이 훨씬 좋았다.

도시는 사람은 많아도 그 많은 사람 중 여행자를 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범죄가 만연하는 위험한 곳도 대부분 도시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대도시를 피해 작은 마을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은 마을에 들어섰지만 이곳에 사는 분들이 갑자기 낮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누구라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좀 물어보고 싶은데 길가에 사람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시골 인심으로 혹시 집에 초대하거나 재워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조금 있었다.

차로 마을을 거의 다 돌았을 무렵 겨우 길가는 아저씨 한분을 발견하고 반가워 쫓아갔다. 탄이 스마트폰 번역기로 이 마을에서 차를 세우고 자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는데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뭔가 소통이 안되는 문제인지 아니면 달가워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시무룩 차로 돌아온 탄이 지도를 보더니 "어, 여기 큰 호수가 있는데? 첫 차박지로 호수 옆 어때?" 한다. 이곳에서 한시간반 정도 떨어진 곳이라니 지금 출발하면 해 지기 전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호수옆 차박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오케이, 가자!”

네비를 보고 열심히 달려가는데 길이 아스팔트에서 자갈밭이 되고 다시 울퉁불퉁한 맨땅이 되어 다른 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나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뿌옇게 된다.

처음엔 석양에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차들의 모습이 마치 자동차 광고의 한 장면처럼 멋져보여 박수를 치며 좋아했는데 30분이 지나고 한시간이 지나가는데 네비에 남은 시간이 줄지를 않는다. 아니 줄기는 커녕 심지어 조금 늘어나있다. 이게 뭐지?


초행길에 도로상태가 안좋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하늘에 석양은 마치 서양화 속 천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같은 아름다운 빛으로 찬란하게 구름을 물들이고 있었지만 속이 타들어가고 눈에 안들어온다. 해가 점점 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조바심만 났다. 생전 처음 가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잘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과연 그 근처에 그럴만한 곳이 있을까? 어둡기 전에 갈 수 있을까? 이 속도로 가다간 불가능할텐데. 지는 해를 묶어놓고 싶었다. 다시 큰길로 돌아갈까 싶기도 했지만 여태 온 거리가 애매하고, 설사 돌아간다 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한참 비포장길을 덜컹대며 가다가 갑자기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와~! 아스팔트다!"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아스팔트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목적지까지 계속 험한 길을 느리게 가야 하나 싶었는데 다시 잘 닦인 길을 만나 쌩쌩 달리니 살 것 같았다. 어두워지기 직전 가까스로 호숫가 마을에 다다랐다. 저 멀리 뭔가 커다란 산맥 같기도 하고 바다의 수평선 같은 신기한 것이 보인다. 설마 저게 호수는 아니겠지 농담하며 가는데 점점 가까워지니 설마가 정말로 바뀌었다. 거대한 호수의 수평선.

우리가 찾아온 항카 호수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 북쪽은 중국으로 호수를 끼고 국경이 나누어져 있다. 호숫가로 가는 작은 길은 웅덩이도 많고 차가 빠질만한 위험한 곳이 좀 있었는데 깜깜해지기 전 도착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호수에 놀러 온 현지 사람들이 차를 댄 곳을 발견하고 우리도 그 옆에 까브리를 잘 주차시켰다.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고 안전해 보였다. 첫 차박지로 꽤 만족스러웠다.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에 커튼을 치고 식사 준비를 하니 완전히 깜깜해졌다. “와 여기 너무 늦지 않게 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어두워졌으면 못 찾을 뻔했어.” 저녁식사로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과 햄과 김을 먹으며 서로 다독였다.

계획 없이 떠난 자만이 만날 수 있는... 계획엔 없는 멋진 경험들

두려움은 모르는 데에서 오는 것 같다. 알면 별것 아닌데 모르는 것에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나는 극 J이다. 탄을 만나기 전 나는 국내건 해외건 여행 전 항상 치밀한 계획표를 만들곤 했다. 여행 일정 내내 몇 시에 뭘 타고 어디를 가고, 점심은 어디서 뭘 먹으며, 오후엔 어디를 가고 저녁은 또 어느 식당에 갈지, 숙소는 어디서 잡을지 등에 대해 사전에 가장 짧은 동선과 합리적인 가격, 꼭 봐야 하거나 먹어야 할 것들을 검색해서 정해놓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동생이나 지인들은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을 편해하고 나를 전적으로 신뢰했었다.

하지만 11년 전 탄과 북중미여행 이후로 이러한 나의 여행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 처음 2~3주간은 하던 대로 여행지와 숙소 등을 미리 찾아놓았는데 얼마 못 가 지치고 말았다. 장기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일을 겪고 풀어나가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촘촘하게 계획을 짜는 데에 쓸 에너지가 없었다.그리고 탄의 말대로 무계획으로 다니는 와중에 더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시간 낭비 같았던 일들도 여행의 일부가 되고 기대하지 못했던 경험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아주 큰 틀, 그러니까 '페리로 블라디보스톡에 차를 보내서 시작한다, 러시아를 거쳐 유럽 쪽으로 가서 아프리카로 들어간다.
' 정도만 정해놓고 여행의 기간도 중간중간의 목적지도, 언제 어디서 마칠지도 그저 그때그때 정하기로 했다.

말도 안 통하고 모든 것이 낯선 러시아에서 목적지 없는 여행을 하자니 매일 길을 찾는 것도, 차 세우고 잘 곳을 찾는 것도, 작은 것 하나하나가 엄청난 도전이고 풀어야 할 난제였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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