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김고은 "대살굿 장면서 간쓸개 다 빼줄 듯..."
2024.02.27 06:00
수정 : 2024.02.27 10:42기사원문
“감개무량합니다. (2024년 개봉작 중 최단기간인 4일 만에 200만 돌파는) 처음 겪어보는 스코어입니다.”
배우 김고은이 영화 ‘파묘’의 파죽지세 흥행에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파묘’는 땅을 찾는 풍수사, 원혼을 달래는 무당, 예를 갖추는 장의사, 경문을 외는 무당까지, 일명 ‘묘벤져스’로 불리는,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미국에 사는 한 재미교포 집안에서 현지 대형병원에서도 어린 자식의 기이한 병을 고칠 수 없자, 무속의 힘을 빌리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묘를 판 관에서 ‘이상한 것’이 나오기까지 음산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관객의 오감을 집중시킨다.
극중 무당 '화림'을 연기한 김고은은 “시나리오를 보고 (풍수지리와 무속신앙) 소재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깊게 공부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이 몇 년에 걸쳐 자료조사를 하고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이 영화에 잘 담긴 것 같다”고 첫 인상을 밝혔다.
그는 대살굿 장면에서 신들린 연기를 선봬 호평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대살굿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이 인물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한지 관객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화림을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초반에 큰 굿 장면을 넣었다고 봤다. (무당 연기를 위해) 정말 영상을 많이 봤다. 실제로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근데 대살굿은 너무 터프한 굿이라서 잘 안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살굿 장면은 실제로 보진 못했다.”
영화에는 굿하는 장면은 세 번 가량 등장한다. 각 장면을 어떻게 다르게 연기했을까? 김고은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굿은 원혼을 달래는 것이라고 하더라. 한국적 정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속인들이 굿을 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 대살굿은 일꾼들에게 해가 가지 않게 방어를 하는 굿이다. 그래서 대살굿 장면에선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했다.”
혼을 부르는 굿에서는 “대신 울어줄 만큼, 한을 달래주 듯 접근했다. 그리고 도깨비불 굿에서는 (상대를) 속이는 것이라서 최대한 (이도현이 연기한 빙의된 제자) 봉길에 집중하되, 말투나 톤을 일상에 가깝게 하려고 했다“고 비교했다.
경문을 외는 장면과 관련해선 “음을 통째로 외웠다”고 말했다. “(무속인들이) 경문 외는 것을 들어보면 아주 멋지다. 공연을 보는 느낌이다. 할 때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더라.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연습을 꾸준히 한 뒤 막판에 선생님께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걸 녹음한 뒤 세 개 중 내가 소화 가능한 것으로 음을 통째로 외웠다.”
무당 역을 소화하기 위해 들인 시간을 얼마나 될까? 김고은은 “굿 장면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시어머님이신 만신 고춘자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땐 긴장을 정말 많이 했다”고 돌이키며 “오랜 시간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필요한 기술은) 틈틈이 배웠다”고 답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찍을 초창기부터 선생님 집을 방문하면서 틈틈이 소통했다. 어떤 날은 수다만 떨고, 어떤 날은 징 치는 것을 배우는 등 하루에 몰아서 배운 게 아니다.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있었고, 마당이 넓어서 키우는 반려견 뛰어놀게 하려고 간 적도 있다. 일상에 스며들어서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배우고, 못갈 때는 대살굿 장면을 유튜브로 봤다. 동작마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동작을 왜 하는지 물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문성은 사소한 것에 나온다고 봤다. 상덕(최민식)에게 반 존대를 한다든지, 굿을 준비할 때 몸을 살짝 살짝 턴다든지 등 디테일을 살리려 집중했다. 또 휘파람을 불 때 귀에 손을 대어도 되는지, 선생님과 영상통화하면서 사사로운 모든 것을 다 물어봤다.”
“극중 대살굿은 하루 만에 찍었다. 4대로 촬영해서, 몇 테이크가 갔는지 모르겠다. 저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냥 퍼포먼스를 했고, 카메라 4대서 잡아낸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무속인 연기 개의치 않았죠"
화림은 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속인과 달리 운동화에 가죽 재킷을 입고, 여가시간에 스피닝을 하는 등 트렌디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로 눈길을 끈다. 그는 “당시 MZ세대 무당이라고 설정한 것은 아니고, 젊은 무속인 중 좋은 차를 몰고 다니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세련된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직업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고 하더라. 의상, 분장, 감독님과 회의를 거쳐서 화림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고은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감독 또한 마찬가지. 무당을 연기하는데 자신의 종교가 끼친 영향은 없을까? 그는 "영향은 전혀 없었다. 무속인 선생님들도 제 종교에 그리 개의치 않아하셨다”고 답했다.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에서 주연한 박정민이 김고은에게 소개한 영화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한예종 선후배 사이면서 영화 ‘변산’을 함께 찍었다. 그는 박정민에 대해 “늘 훌륭한 선배라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많다. 생각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서 귀 기울어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번에도 귀 기울어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파묘'에 함께 출연한 최민식은 김고은에 대해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가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그렇게 얘기해준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최민식과 호흡한 소감을 묻자 “기둥 같은 존재였다”고 답했다. “중심을 딱 잡고 계셨다. 안정감을 주셨다. 진지한 영화라고 해서 선배들이 늘 진지하게 계신 게 아니고, 장난도 많이 치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셨다. 에너지를 확 올려야 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그러한 현장 분위기가 오히려 도움이 됐다. 웃고 신나는 상태라서 그 에너지를 받아서 더 과감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늘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제가 만난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일상적인 인물이니까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전 늘 다른 사람 같고 새롭고 어렵다. 전작에 대한 고려는 크게 하지 않는다. 외곬수라서 그런지 여타 다른 생각은 잘 못한다."
신인 시절과 비교해 책임감이 커진 게 변화다. 그는 "작품에 참여하고 제작하는 분들이 저에 대한 기대치가 있고 제가 해내야하는 지점이 더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주인의식을 가지려고 한다”며 부연했다.
“연기는 늘 어렵다. 그런데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출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그 희열이 커서 나머지 어렵고 힘든 순간을 잊고 다시 또 하게 된다. 그런 희열은 매순간 찾아오는게 아닌데, 그것을 느낄 때마다 행복하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