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만큼 중요해진 ‘아세안5’...“반도체 등 중간재 수출 경쟁력 키워야”
2024.02.27 06:00
수정 : 2024.02.27 06:00기사원문
■국외 생산 거점 아세안5...“수출 비중, 중간재 높고 소비재 낮아”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대(對)아세안5 수출 특징 및 향후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기준 아세안5(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국가들이 국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아졌다. 개별국가 기준으로도 베트남은 우리 총수출에서 8.5%를 차지해 중국(19.7%), 미국(18.3%)에 이은 제3위 수출국이다. 해외직접투자에서도 아세안 5개국에 대한 투자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졌다.
이같이 우리 교역에서의 중요성이 커진 아세안 5개국은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서 주로 한·중·일 등으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 후 미국·EU 등 선진국으로 최종재를 수출하거나 중국 등 인접 국가로 다시 중간재를 수출하는 생산공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對)아세안5 수출은 현지 생산공정에 투입되는 중간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소비재 비중은 아직 매우 낮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고 석유제품·화공품 등 여타 중간재 비중도 60% 이상의 높은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식품, 의복 등 최종재는 5%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중간재 위주의 수출구조가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현지시장 진출(horizontal FDI) 목적보다는 생산비용 우위에 기반한 수직적 생산분업(vertical FDI)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최근 아세안 5개국을 대상으로 한 직접투자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중간재 위주의 수출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對)아세안5 수출, 미국 소비-중국 생산에 좌우
아세안 5개국에 대한 국내 수출은 미국과 중국이 자국 내 소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해당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수요에 크게 영향받고 있고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국 소비의 영향이 크게 확대됐다. 먼저 아세안 5개국들의 수출구조를 보면, 대미 수출에서는 식료품, 의복 등 소비재 비중이, 대중 수출은 석유화학, 금속·비금속 등 중간재 비중이 높다. 이에 아세안5로 수출된 우리 중간재는 역내에서 가공을 거친 후 주로 미국의 최종 소비 용도로 수출되거나 중국 내 생산에 사용되는 중간재의 용도로 수출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의 소비지출 또는 중국의 산업생산과 우리나라의 아세안 5개국 수출은 해당 국가들 내 생산을 통해 연결돼 상관관계가 높고 미국 소비와의 연계성이 과거보다 크게 강화됐다. 한은이 국내 아세안 5 수출과 미국 소비지출·중국 산업생산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0년부터 2015년에는 미국 소비 지출이 0.15, 중국 산업생산이 0.81로 집계됐으나 2016년부터 지난해는 각각 0.51, 0.54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산업연관표를 통한 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국내 아세안5 중간재 수출 중 약 절반은 아세안 5국가들의 소비와 투자로 인해 유발된 생산(직접경로)에 사용됐다. 나머지 절반은 아세안5 역외 국가들의 소비와 투자에 의해 유발되어 아세안5 지역에서 생산공정을 거쳐 수출(간접경로)됐는데, 역외 국가들 중에서는 미국(11%)과 중국(9%)으로 귀착된 비중이 높았다.
■한은 “중간재 고도화하고 소비재 수출도 증대해야”
한은은 아세안5의 글로벌 생산거점 기능이 갈수록 공고해지면서 중장기적으로 해당 지역 내 수입시장에서 우리의 주요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아세안5 수입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2017년 이후 다소 하락했고 우리 기업들이 여타 신흥국에 비해 우위를 보이는 우주, 항공, 전자부품 등 고위기술 중간재의 점유율도 상승세를 멈추고 정체된 상태다. 이는 중국이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비용절감 등을 위해 아세안5 지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을 확대하는 가운데 최근에 미국의 무역규제 회피를 위해 베트남·멕시코 등을 통한 우회수출을 늘리고 있는 점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아울러 중간재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등 소비재 부문에서도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중국과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배터리(전기차) 공장 착공 등을 통해 현지생산 및 역내판매 증대를 추진하는 한편, 스마트폰 공장 준공(OPPO, 인도네시아), 차량용반도체 공장 건설(SONY, 태국) 등 아세안 지역의 풍부한 소비시장을 겨냥한 투자도 늘려나가고 있다.
이에 한은은 국내 기업이 그간 중국시장을 생산기지로 삼아 중간재 중심의 대(對)중국 수출구조를 성공적으로 활용해 온 반면, 내수시장 안착에는 어려움을 겪은 것을 경험 삼아 아세안5 수출 성장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중 수출은 지난 2010년대부터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고 내수중심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구조적 제약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상태다.
한은은 “앞으로 대(對)아세안 수출이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산기지로서의 활용 측면에서 우리 주력 중간재의 질적 고도화에 힘써야 한다”며 “아세안의 인구 및 소비시장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여 양질의 소비재 수출 증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