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OO으로 치료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약을 쓴다

      2024.03.02 06:00   수정 : 2024.03.02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먼 옛날 한 남자가 관직을 마친 후에 고향마을에 내려가 살았다. 어느 날 남자는 찬 곳에 머무를 일이 있어서 그곳에 잠시 기거를 하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한 상한병(傷寒病)으로 생각하고서는 인근의 의원들을 찾았다.

가장 먼저 진료를 맡았던 한 의원은 “당신은 지금 고(蠱) 때문에 기침을 하는 것이요.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요.”라고 겁을 주었다.


고(蠱)는 충이나 벌레를 의미하는데 옛날에는 노채충(勞瘵蟲)이나 고(蠱)와 같은 벌레가 노채병(勞瘵病)을 일으킨다고 여겼다. 노채병은 요즘의 폐결핵과 같은 병증이다.

남자는 자신이 곧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당장 죽게 된다고 하니 두려웠다. 그래서 원래 약값의 수배를 지불하고서 서둘러 처방을 받았다. 의원은 고(蠱)를 제거하는 처방을 했다.

“이 처방을 복용하면서 다른 음식은 일체 먹지 말고 단지 밥과 간장 한 종지만 드시도록 하시오. 그래야 약발이 잘 받을 것이요.”라고 했다.

남자는 알겠다고 하면서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탕약을 복용하면서 동시에 몸 여기저기에 뜸도 떴다. 그런데 탕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그 날부터 배가 사르르 아프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하는 횟수를 늘리면 복통과 설사는 더욱 심해졌다.

남자는 의원에게 “약을 먹으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서 고통스럽소.”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의원은 “고를 죽이려면 독한 약을 써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설사가 나는 것이요. 그냥 견뎌 내시오.”라고 하면서 힘들더라도 탕약을 계속 복용하게 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남자는 원래는 없던 증상도 생겨나면서 살이 빠지고 정말 노채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몸이 수척해졌다. 원래 있었던 기침도 줄지 않았고, 몸 속에서는 열이 나는 듯 하면서 간간이 오한이 생겼다. 남자는 다른 의원을 찾아갔다.

그 의원은 “이것은 고병(蠱病)이 아니라 열독(熱毒)이요.”라고 하면서 열을 치는 차가운 성질의 약을 처방했다.

남자는 그 처방을 복용하자 아침에는 토하고 저녁에는 설사를 했다. 설사는 물에 풀어 놓은 아교처럼 점액이 섞여 나왔다. 입맛이 떨어져서 이제는 밥 한공기조차 먹지를 못했다. 남자는 다른 의원을 찾았다.

남자는 의원에게 “한 의원은 고병으로 보고 약을 처방했지만 복통설사가 심했을 뿐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한 의원은 열병으로 보고 찬약을 썼지만 구토 설사를 하면서 밥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소이다.”라고 했다.

그 의원은 남자가 치료해 왔던 과정을 자세하게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진단을 반대로 뒤집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열병이 아니라 한병(寒病)이 분명해 보이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유석(鍾乳石)과 오훼(烏喙)를 잡다하게 섞어서 복용하게 했다. 종유석은 약성이 뜨겁고 독이 있는데, 석약(石藥)이라고 해서 광물성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독이 있어서 오랫동안 먹으면 안된다. 오훼(烏喙)는 바로 초오다. 뿌리 모양이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이 까마귀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훼라고 불렀다.

초오는 약성이 대열(大熱)해서 심한 냉증에 명약이지만 독성이 강해서 자칫 잘못 사용하면 죽기도 한다. 남자는 종유석과 오훼가 섞인 처방을 복용하자 온 몸에 종기가 나고 짓무르고 살이 헐기 시작했다. 눈 앞은 핑핑돌면서 어지럼증이 생기는 등 온갖 이상한 증상이 다 나타났다.

남자의 병은 더욱더 심해졌다. 기침을 치료하고자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기침이 낫기는커녕 없었던 증상들이 먹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남자는 ‘모든 의원들이 나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낙담을 했다.

그래서 저녁만 되면 마을 언덕배기에 앉아 서쪽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하니 지는 해만 쳐다보는 것이 일상이었었다.

그 마을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당대 최고의 명의로 소문난 의원이었으나 나이를 먹어 이제는 의원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마을 길을 걷다가 언덕 귀퉁이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물었다. “몇년 전까지 관리를 했던 분 아니신가? 근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다 죽어가는 몰골로 석양만 쳐다보는 것인가?”
남자는 노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노인은 남자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선 진맥을 해 보더니 “이는 의사의 죄이며 용렬한 의원들이 약을 잘못 쓴 탓일세. 자네에게 원래부터 무슨 병이 있겠는가? 그냥 가만뒀어도 사라질 기침이었을 것을 결국 약을 먹어서 병이 심해진 것이네. 이제라도 의원들의 처방을 끊고서 휴식하면서 평소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도록 하게나. 그렇게 하면 기(氣)가 완전해지고 입맛이 돌게 될 것일세. 그 때 좋은 약을 쓴다면 한 번만 마셔도 효과를 볼 걸세. 만약 음식을 조리해서 기운을 좀 차리면 내가 그 때 처방을 해 주겠네.”라고 했다.

노인은 이어서 “그리고 기침에는 더덕과 도라지가 좋다네. 그래서 이것들을 반찬으로 해서 자주 먹게나. 그리고 생강을 즙을 내서 꿀과 함께 섞어 졸인 후에 하루 몇 번씩 입에 넣고 먹으면 속도 편하고 구토나 설사도 멎을 것이며 기운도 나면서 무엇보다 자네의 기침에 특효할 것일세. 특히 약성이 냉하고 서늘한 찬 음식을 먹으면 기침이 심해지지 조심하게나.”라고 일러주었다.

정말 노인의 말대로 먹는 것을 조절해서 양껏 먹고 식이를 했더니 기운이 나면서 기침도 조금씩 줄었다. 남아 있는 기침은 노인의 처방해준 몇 첩만으로 모두 사라졌다. 처음에 남자를 치료했던 의원들이 노인을 찾았다.

의원들은 “어떻게 그 남자를 치료하신 겁니까? 탕이 아닌 고작 음식으로 치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의사는 먼저 병의 근원을 밝혀 먼저 음식을 조절해야 하오. 그래서 음식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은 뒤에야 약을 써야 하는 것이요. 그런데 무턱대고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게 하면서 독한 약을 처방해 대니 어찌 병을 이겨낼 수 있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한 의원이 “저도 익히 음식으로 병세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이요법은 어린아이들이나 연세가 많은 노인들을 치료할 때 필요한 것 아닙니까? 약을 잘 먹을 수 있는 건장한 성인도 먼저 음식으로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노인은 “음식으로 병을 조리하는 것은 노인이나 소아에게만 적합한 것이 아닌 것이요. 또한 음식으로 병을 먼저 조리하라는 것인 약을 먹지 못하거나 약값이 없어서가 아니오. 약을 무리없이 복용할 수 있는 환자나 돈 많은 부자의 경우라도 병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적극적으로 섭취하고 해가 될만한 최소한의 음식으로 주의토록 하면 될 것이요.”라고 하였다.

의원들은 노인의 말을 듣고서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의원들은 그 이후로는 환자들에게 무작정 음식을 먹지 말도록 하는 일이 없었다. 대신 먼저 음식의 기운과 효능을 알려주면서 식이요법을 함께 할 것을 당부했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도 물론이고,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더 음식에 신경을 써서 식이조절을 하도록 했다.

음식과 약은 원래 기원이 같다. 예부터 맛과 풍미가 좋은 것들은 음식으로 먹게 되었고, 쓴맛이나 신맛 등 오미가 강하고 기운이 센 것들은 약으로 사용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음식 또한 약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原)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 제목의 ○○은 ‘음식’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蓋公堂記. 宋. 蘇軾. 始吾居鄉, 有病寒而欬者問諸醫. 醫以爲蠱, 不治且殺人, 取其百金而治之. 飲以蠱藥, 攻伐其胃腸, 燒灼其體膚, 禁切其飲食之美者, 期月而百疾作, 內熱惡寒而欬不已, 纍然真蠱者也. 又求於醫, 醫以爲熱, 授之以寒藥, 旦朝吐之, 暮夜下之, 於是始不能食. 懼而反之, 則鍾乳烏喙雜然并進, 而漂疽癰疥眩瞀之狀, 無所不至. 三易醫而疾愈甚. 里老父教之曰: “是醫之罪, 藥之過也. 子何疾之有? 人之生也, 以氣爲主, 食爲輔. 今子終日藥不釋口, 臭味亂於外, 而百毒戰於內, 勞其主, 隔其輔, 是以病也. 子退而休之, 謝醫却藥而進所嗜, 氣完而食美矣, 則夫藥之良者, 可以一飲而效.” 從之, 期月而病良已. (개공당기. 송나라. 소식. 예전에 내가 향리에 살 때, 한병으로 기침을 하는 사람이 여러 의사들에게 문의했다. 어느 의사는 고이니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죽게 된다면서 환자에게 백금을 받고 치료했다. 고를 제거하는 약을 복용시켜 그 위장을 매섭게 공격하고 몸의 피부를 지졌으며 맛있는 음식은 절대로 먹지 못하게 금지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 온갖 병이 생겨나 속에는 열이 있으면서 오한도 있고 기침도 그치지 않아서 정말 고처럼 수척해졌다. 또 다른 의사를 찾아가자 의사는 열이라면서 한약을 주었는데, 아침에는 토하고 저녁에서는 설사하므로 이제는 음식을 못 먹게 되었다. 겁이 나서 진단을 뒤집으니, 종유석과 오훼를 잡다하게 섞어서 복용시키자 표저며 종기와 옴이며 현무 등 온갖 증상이 다 나타났다. 세 번이나 의사를 바꾸어도 병은 점점 심해졌다. 마을의 노인장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이는 의사의 죄이며 약을 잘못 쓴 탓일세. 자네에게 무슨 병이 있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기가 주체가 되고 음식은 보조라네. 지금 자네는 종일 약이 입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냄새와 맛이 밖을 어지럽히고 온갖 독기가 속에서 싸워 주체인 기를 지치게 하고 보조인 음식을 막았으니, 이 때문에 병든 것일세. 자네가 물러나 휴식하면서 의사를 사절하고 약을 끊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가, 기가 완전해지고 입맛이 돌게 되었을 때 좋은 약을 쓴다면 한 번만 마셔도 효과를 볼 걸세.” 그 말을 따랐더니 한 달이 되자 병이 완전히 나았다.)
<동의보감>孫眞人曰, 醫者先曉病源, 知其所犯, 以食治之. 食療不愈, 然後命藥. 不特老人小兒相宜. 凡驕養及久病厭藥, 窮乏無財者, 俱宜以飮食調治之也. (손진인이 “의사는 먼저 병의 근원을 밝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나서 음식으로 치료해야 한다. 음식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은 뒤에야 약을 쓴다.
이는 노인이나 소아에게만 적합한 것이 아니다. 귀하게 자란 사람이나 오랜 병으로 약을 싫어하거나, 가난하여 재산이 없는 사람은 모두 음식을 조절하여 치료해야 한다.
”고 하였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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