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본색 드러내는 검사들
2024.02.28 18:19
수정 : 2024.02.28 18:19기사원문
검사 등의 공직자가 사의 표명 직후 선거에 나서는 것을 막을 법적 수단은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퇴하면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데, 사직서가 접수된 때 그만둔 것으로 본다. 법을 아는 이성윤은 정확히 총선 90일 직전인 지난달 8일 사직서를 냈다. 조국의 출판기념회에 참석,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 하나회"라는 정치적 발언을 해 징계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현직 검사 신분이다.
이성윤이 누군가. 대표적 '친문(親文) 검사'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맞서 정권 옹호에 앞장선 인물 아닌가. 그런 이성윤을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인재'라며 '러브콜'을 보냈었다. 중립을 지킨 검사라면 모르되 이성윤에게 검찰개혁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같은 기관 연구위원 신분으로 전남 순천갑에 출마한 신성식도 비슷한 경우다. '검언유착 의혹 허위 보도'에 연루돼 있고 '친명(親明)' 소리를 듣는 그는, 자신은 정치검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선거판에 뛰어든 것 자체가 이미 정치인데 말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많은 판검사들이 정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예비후보로 등록하거나 선거 참여를 선언한 검사 출신이 47명이라고 한다. 판사 출신도 15명 내외가 된다고 한다. 대개 재직 시부터 사법부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인물들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1대 의원 중 법조인 출신은 15% 정도로 영국·일본 등 선진국보다 훨씬 많다. 최근 무죄판결이 난 '사법농단' 척결을 외치고 법원에서 국회로 직행했던 판사 3인방 이수진, 이탄희, 최기상도 그중 일부다.
정권이 검찰을 권력장악의 도구로 활용하다 보니 판검사들이 정치화되고 종국에는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삼권분립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입법, 행정, 사법의 세 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사법·수사기관이 예속되면 균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사법부와 검찰의 신뢰는 떨어지다 못해 땅에 처박힌다. 선진국 중에서 이런 나라는 없다.
전 정부에서 사법부와 검찰의 정치화는 극심했다. 김명수 사법부는 편파적 이념으로 대놓고 분칠을 했고, 추미애의 법무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검사들을 좌천시키며 정권에 충성했다. 사상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탄생과 법무부 장관의 여당 비대위원장 보임은 보수우파가 의도적으로 창출하지 않았다. 일종의 악순환인데 원죄는 문재인 정부에 있다.
정계로 진출한 율사(律士)들의 성적은 어떨까. 전문성을 강화하기보다 이념적 갈등을 부추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분석한 결과다. 판검사들은 법조문 해석에만 전문가이지 전반적인 국정, 즉 경제와 외교·안보·과학·복지·교육 등에 깊이 있는 식견이 없다. 국가 미래와 경제, 민생에는 관심이 적고 권력투쟁에 매달려 과거를 파헤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을 본업으로 여긴다.
영국 하원의원은 변호사 출신이 7.2%, 기업계 출신이 17.2%다. 프랑스 의회도 기업 임원 출신 비율이 21.1%로 가장 높다. 변호사 출신은 4.8%에 불과하다. 유능한 관료를 일찌감치 정치인으로 단련시키는 일본은 중의원 가운데 정계 출신이 33.8%로 가장 많다. 변호사 출신은 3%에 그친다. 선진국의 최고 지도자들도 율사 출신보다 경제통이 많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판검사들의 여의도 러시는 국회를 달콤한 권력의 유토피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의도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인식을 버리게 하려면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성부터 보장해야 한다. 그다음, 열 손가락으로도 꼽기 어려운 의원 특권을 내려놓도록 국민이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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