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일원으로 광장에 섰던 그날… 일상이 특별한 역사가 됐다
2024.02.29 18:17
수정 : 2024.02.29 21:57기사원문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삶은 사건의 연속이다.
모든 건 연루되어 있고 끊임없이 교섭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삶이 외력의 개입 없이 홀로 무관할 수 없으며,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역시 대중의 욕망과 감정을 동력 삼아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사적인 흔적'인 동시에 '공적인 기록'인 셈이다. 사람들은 대개 돌아올 수 있을 만한 길을 선택해 떠난다. 어떤 이들에게 삶이란 운명을 건 모험일 수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에게 하루하루란 그저 견뎌야 하는 순간이며 평탄히 지나길 고대하는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매끈하게 다듬어진 길만 무한정 편안히 걸어갈 수 있는 인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한 위험을 만나고 험난한 고비를 겪는다. 그렇게 경험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여 우리 삶의 '주름'과 '굴곡'이 만들어진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지난 역사적 사건들과 우리 삶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일상 역시 그 사건들로 크게 바뀌어왔다. 사건과 사고의 영역에서 '공(公)'과 '사(私)'는 명확하게 분별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의 공적 사건들을 뉴스로 읽고 듣거나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간다. 그러다 별안간 어떤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경우도 있다. 시대의 한복판에서 군중의 일원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던 경험들도 누구나 한 두 번쯤 가지고 있다. 모두에게 일상의 시간이 특별한 역사가 되는 순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1960년대 부정선거를 반대한 청년들과 19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친 대학생들과 2010년대 광장에 모여 다시 또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의 사회적 기대와 미래에의 희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개인의 삶이 뒤흔들리거나 공동체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특별한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성숙해왔다. 그 시간을 관통하는 힘과 노력이 한데 모여 선을 긋고 줄을 이으면 역사가 된다.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빛나는 발전과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동시에 사람이 죽거나 어느 한 곳이 크게 무너져 치부가 드러날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만 미덕으로 아는 야만의 사회이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나쁜 습속들을 버리려는 의지를 지닌 성숙한 시민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무색하게 하는 반동의 움직임도 여전하다. 음험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사회적 위험들은 도처에서 개인의 삶을 위협하고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비참하게 죽거나 악다구니 속에서 살아야 하고,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허다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무참한 사건과 사고들이 연속되는 비정한 세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어느 한쪽이 살짝 균형을 잃어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곳이기도 하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볼썽사나운 다툼과 갈등으로만 점철되지 않았다.
이 책은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로 우리가 살았던 시간을 돌아본다. 너무 빨리 잊어버리거나 금방 기억하지 못하게 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꺼내본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결국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행위다.
지난 수십년간 잘 모르고 지나친 소소한 사건들부터 누구나 기억할 만한 큰 사고들까지 복잡하고 섬세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가치와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강부원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