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식구가 즐긴 '추억의 빵찬'..추억을 소환하는 '크림대빵'
2024.03.13 14:09
수정 : 2024.03.13 14:11기사원문
먹고 싶었다. 팔도 점보도시락 컵라면도, 공간춘 쟁반짬짜면 컵라면도 말이다. 즐겨보는 먹방 유튜브 채널들은 앞다퉈 기존 컵라면의 8배 용량인 대형 컵라면을 먹는 영상을 올렸다.
둘 모두 이미 먹어 본 '아는 맛' 제품이었지만 패키지와 용량을 키운 것만으로도 이야기와 재미가 생겼다. 또 매진 행렬이 이어지자 기자 역시 그 흐름에 동참하고 싶었다. 자동차 업계를 출입하는 기자가 새 차가 출시되면 시승해 보는 것처럼, 식음료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 용량의 8배에 달하는 컵라면을 혼자 사서 먹자니 다 먹지 못하고 남길 게 뻔했다. 그렇다고 8인분 용량의 대형 컵라면을 사서 집에 가지고 간 뒤 70대 노부모님과, 40대 후반인 형과 함께 조촐한 저녁으로 먹기도 거시기(?)한 상황이었다. '대한독립'은 커녕 '가구독립'도 못한 낼 모레 불혹 불효자가 할 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SPC삼립이 출시 60주년을 맞아 6.6배로 크기를 키운 '크림대빵' 제품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아주 오래 전 충남 운산에 있는 시골 외할머니댁에 가면 무지개 색깔의 '사랑방 선물' 캔디와 함께 먹어봤던 추억의 그 크림빵의 점보 버전이었다. 포장 뒷면 '크림대빵' 사용 설명서에는 '크림대빵과 함께 소두 인증샷', '크림대빵과 함께 어디든 나만의 런웨이로' 라는 등의 삽화가 있었다. 실제로 빵의 포장 윗부분에 손잡이가 있어 종이백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형태였다.
백팩을 메고, 크림대빵을 한 손에 든 채 서울 강남역 2호선 지하철에 탔다. 한정판 제품을 득템했다는 자부심에 '이것이 12년 전 싸이가 노래했던 오빤 강남스타일의 현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부러움의 시선이 느껴질까 긴장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1호선 인천행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에 오는데 한 노부부께서 '크림대빵'을 알아보시고 말을 거셨다. 사이즈에 놀라고, 가격을 물어보고, 점보 컵라면 얘기도 하셨다.
집에 와서 크림대빵을 개봉하고, 안에 든 케이크 자르는 플라스틱 칼로 4등분을 했다. 4식구가 한 조각씩 나누고 우유도 준비했다. 크림대빵의 맛은 역시나 이미 알고 있는 '아는 맛'이었다. 빵의 중심에 집중된 크림 부분을 크게 한 입 먹으니 볼 안쪽을 간지럽히는 듯한 특유의 옛날 크림 맛이 느껴졌다. 최근 빵 1개에 3000원 가까이 하는 우유크림빵의 맛처럼 부담 없이 목으로 넘어가는 '비싼 맛'은 아니었지만 '사랑방 선물' 캔디가 생각나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었다. 맛이라는 건 혀로 느끼는 화학작용이라기 보다는 상황, 기분, 함께 먹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4식구가 즐긴 '최초의 빵찬'이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