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체계 왜곡, 누구 책임인가
2024.03.13 18:16
수정 : 2024.04.09 17:09기사원문
첫째, 상급종합병원의 과잉 의존과 기형적 팽창이다. 그간 상급병원을 찾는 환자 45%가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경증 수준이었는데 하루 1만명이 넘었다. 외래환자 진료가 상급병원 수익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정부도 방관했다. 의료수가를 높여 병원 대형화를 유도했다. 지역거점 중소병원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경증 환자들의 과잉 의료쇼핑, 상급병원 쏠림이 고착화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외과의사 이국종은 책(골든아워)에서 '한국의 많은 병원들이 충분한 전문의료인 채용을 통한 진료 내실을 다지기보다 화려한 외장과 외래 공간에 공을 들인다. 병원들의 행태가 과대포장한 불량식품 같았다'고 일침을 날렸다.
둘째, 불합리한 의료수가는 필수의료 붕괴를 가져왔다. 현행 의료수가는 신경외과, 소아·산부인과 등 진료·수술 처치가 많아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를 받는 구조다. 이런 필수의료행위가 원가의 80% 선에 그치는 반면 영상검사(116%) 등은 100% 이상 보장받는다. 수가 결정에는 의사집단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다. 이들은 수술·처치를 할수록 손해보는 행위별 수가체계를 왜 지금껏 그대로 둔 것인가. 결국 높은 소명이 요구되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대우받지 못하는 의료체계 왜곡이 고착됐고 저출산마저 심화됐다. 소아청소년과(2024년도 전공의 지원율 25.3%), 흉부외과(38.5%), 산부인과(67.4%) 등은 빠르게 위축됐다.
셋째, 상급병원의 독식은 1만여 저임금 전공의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상급병원 전체 의사의 40~50%가 전공의다. 이들 중 흉부외과·외과·신경외과 등 필수의료과 전공의 절반 이상이 많게는 주 100시간을 일했다. 고작 시급 1만5200원을 받고서 말이다. 전공의들은 대체불가한 특성상 집단행동을 무기 삼아 의대정원 10% 감축(2000년), 원격의료 철회(2014년), 공공의대 설치 및 증원 저지(2020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바꾸지 못한 건 아이러니하다. 정부가 19년째 동결된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며 이 단단한 껍질을 깨려 하자 선배 의사들이 누린 특권을 꿈꿨던 미래의 전문의들이 쌓였던 억울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진 건 아닌가.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성형·피부과 등 비급여 고수익 진료과는 비대해지고 지역 필수의료 체계는 붕괴된 현실,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을 끼워 파는 혼합진료가 성행해 건강보험 재정이 위협받는 사실을 말이다. 의사들의 기득권을 적당히 봐 주고 재정충당 없는 보편적 보장성 강화라는 명분이 맞아떨어진 건 아니었나.
뒤늦게 정부는 10조원 이상의 재정을 써 필수·지방의료체계를 복원·재건하겠다고 한다. 결국 쪼그라든 미래 세대가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고령화로 수입·지출이 역전되는 건보재정(누적준비금)은 2028년 고갈된다. 땜질식 대책으론 수십년 틀어진 의료체계를 바로잡지 못한다. 국민 의료인식 탓할 게 아니라 정부가 할 일은 지속가능한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다.
의사들의 행태도 모순적이다. '의사를 이길 정부는 없다'는 특권 우월의식에 찌든 오만에 우리가 피해자라고 하는 꼴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면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설득해야 하지 않나. 필자는 숭고한 직업인 의사를 존중한다.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차별 없이 대한 정신과 의사 고 임세원 교수,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술을 펼친 고 이태석 신부를 기억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 생사의 현장을 지키는 많은 의사들의 희생과 노고를 격려한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