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무가 걸머진 '마속'의 짐

      2024.03.18 18:34   수정 : 2024.03.18 18:34기사원문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 입은 곧 생존도구다. 정치인들은 입을 잘 놀리고 말에 능숙하다. 언변이 좋아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역(逆)도 성립된다.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로 대중을 휘어잡는 기술은 정치인의 능력으로 간주된다. 다변(多辯), 능변(能辯)이 정치인의 필수요소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언로가 막혀서 유언비어가 날뛰어서는 안 되고, 불통과 곡해를 방지해야 하기에 말의 가치도 그만큼 소중하다.

말의 선의(善意)는 절제를 지킬 때 발휘된다. 절제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말은 악변(惡變)한다. 중상과 비방에서 그치지 않고 설화(舌禍)를 부른다.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참아내는 절제는 참 어려운 윤리다. 인륜을 갖춰야 하고 인내를 알아야 한다. 두 가지가 다 부족한 다변자가 설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농후하다.

정치의 계절이 오자 말의 천태만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이다 화술'로 스타 정치인이 되었다가 형수 욕설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2찍' 막말은 다변 이 대표의 인성을 다시 의심케 했다. 정치생명이 끊어지게 생긴 국민의힘 젊은 정치인 장예찬의 과거 언사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장예찬의 설화는 잘못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지만,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발언이 만약 확신의 소산이라고 하면 보통 문제는 아니다. '오홍근 회칼 테러'를 들먹인 것만으로도 잘못이다. 이재명, 배현진의 테러까지 옹호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누구나 자신이 극우세력이라고 해도 비호할 바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언론전략기획단장을 지낸 황 수석은 결과적으로 여당에 치명상을 입혔다. 후배 기자들을 앞에 앉혀놓고 편하다 보니 막말을 한 것이라고 본다. 언론에서 정치로 전향한 그의 정치적 미숙함도 원인일 것이다. 언론사 선배와 후배가 아니라 용산의 핵심과 언론인의 자리임을 망각한 게 분명하다.

황 수석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의 성향도 모르고 다변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다. 말 훈련을 받은 앵커 출신이라면 다변의 참사일 가능성이 크다. 선거가 코앞에 닥친 국면에서 여당의 승리를 책임진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서는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다. 대통령실은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에두른 표현으로 황 수석을 감싸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지지자들은 시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당으로서는 표를 많이 잃게 생겼다. 인륜을 알지만 절제력이 부족해서 나온 말이라고 십분 이해해도 이쯤에서는 황 수석 자신이 거취를 밝히는 것이 맞는다. 여당 입장에서는, 지금 판세로 보면 여소야대 구도가 그대로 재현될 비상 상황이다. '읍참(泣斬)'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마속(馬謖)'을 자청해야 한다.

여당은 '운동권' 청산을 외치지만 운동권의 저변은 탄탄하다. 영화 '서울의 봄'의 여파도 크다. 한 지방방송사가 2년 전에 만든 '6공화국'이란 다큐물이 400만뷰를 넘어서며 역주행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운동권이 독재저항이라는 정당성을 무기로 재포장돼 부활하는 중이다. 오홍근 사건도 바로 그 시절의 산물이다. 그때를 모르고, 잊고 있던 이들에게 황 수석은 기억을 되살려 준 꼴이 됐다.

처음 정치로 뛰어든 박정희가 누구를 만나 한 말이 '잘해 봅시다' 다섯 글자였다고 한다. 달변이 꼭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눌변이라도 정치를 잘할 수 있고, 때로는 침묵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국가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해진다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말은 해야 하지만 많으면 반드시 탈을 일으키는 요물이다.
세치 혀를 잘 다루는 순발력을 뽐내기보다는 절제력을 겸비한 깊고 큰 울림을 낼 줄 알아야 큰 정치인이 된다.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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