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종섭' 논란에 시험대 오른 공수처...'증명의 시간'
2024.03.19 14:10
수정 : 2024.03.19 14: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한 장면이다. 첫사랑인 레이첼 도스를 만난 브루스 웨인은 변명에 급급하다. 호텔에서 미인들과 방탕하게 놀다 나가는 길에 그녀를 마주쳐서다.
“브루스, 하지만 너를 정의하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야.”
지난 2021년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살아있는 권력’에도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출범 취지와 달리 세간의 평가는 박하다. 다름 아닌 초라한 성적표 때문이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지휘 아래 1기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사건은 3건, 그중 한 건의 유죄판결도 끌어내지 못했다. 공수처가 그 필요성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급기야 '폐지론'까지 나왔다.
그런 공수처에 다시 한번 ‘증명의 시간’이 왔다. 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의 ‘윗선’으로 지목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하면서다.
사건은 급박하게 진행됐다. 정부가 지난 4일 출국금지된 이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했고, 5일 이 전 장관이 출국금지 조치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며, 8일 법무부가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10일 이 전 장관이 호주 브리즈번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출국에 후폭풍도 컸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공수처에서도 출국 허락을 받았다"며 해명했고 공수처는 "사실과 다르다"며 맞서는 등 설전이 벌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은 물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까지 나서 ‘이종섭 즉각 소환’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이 공수처에 기대하는 것은 호주에 있는 이 전 장관의 소환 여부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공수처가 수사하는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실재했는지에 대한 규명이 핵심일 것이다.
의혹의 골자는 채 상병의 사망 경위를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발표를 상부에서 막고, 경찰에 넘어간 사건을 국방부가 나서 부당하게 회수했다는 것이다. 외압이 정말 있었는지, 있었다면 윗선이 어디까지 연루됐는지 규명하는 것이 과제다. 공수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 필요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해왔다. 이러한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제는 행동으로 증명할 차례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