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맹’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갈등… 주총 표대결 무승부

      2024.03.19 18:07   수정 : 2024.03.19 18:07기사원문
75년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지내던 영풍과 계열사 고려아연이 사상 첫 정면 대결한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실상 무승부를 거뒀다. '정관 변경'은 영풍 의견이, '배당금 산정'은 고려아연 의견이 각각 주총에서 통과됐다. 재계 대표적인 공동 경영의 모범 사례였던 양사가 오너 3세 경영기에 극한 대립하면서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관변경·배당 놓고 '무승부'

19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이날 서울 강남 영풍빌딩에서 열린 '제50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연결 및 별도 재무제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포함) 승인의 건'이 통과됐다. 해당 안건에는 고려아연 원안이었던 배당금 5000원이 포함됐다.
찬성률은 62.74%다.

앞서 영풍은 지난달 고려아연이 결산 배당 5000원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주당 1만원을 배당하라"고 요구했지만 무산됐다. 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다.

다만 고려아연이 낸 특별 결의 대상 '정관 변경 안건'은 부결됐다. 상법에 따르면 특별 결의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발행 주식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통과된다. 올해 고려아연 주주총회 참석률이 90.31%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60.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영풍 측 지분은 약 32%다. 이 안건은 경영상 필요한 외국 합작법인에만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던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영풍 관계자는 "정관이 개정되면 무차별적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가능해진다"며 "기존 주주의 심각한 주주권 훼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사실상 영풍과 장씨 일가의 반대만으로도 안건 통과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맞받았다.

■75년 공동경영, 갈등 최고조

양 측의 '장외 신경전'은 주주총회 시작 전부터 이어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최근까지도 서로를 비판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며 첨예한 갈등을 드러냈다. 두 기업의 갈등 상황은 주총 개최 일정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들은 50년 넘게 같은 날 진행하던 주총을 지난해부터 각각 다른 날에 열고 있다. 올해도 영풍은 20일 주총을 개최한다.

양측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70년 넘게 이어온 그룹 공동경영도 삐걱거리고 있다. 고려아연 전신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기업사'다. 이후 사업이 확장하며 장씨 일가가 영풍 석포제련소,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경영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이들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22년 12월 회장직에 오르면서다. 최 회장은 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인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최 회장은 승진 후 한화, LG화학, 트라피구라, 모건스탠리, 한국투자증권 등과는 지분 교환을 통해, 현대차와는 지분교환 없는 유상증자를 통해 '우군'을 확보했다. 업계는 신사업 방향성을 두고 영풍과 이견을 드러낸 고려아연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호 지분을 확보했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우호지분은 지난해 9월 기준 32.5%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유상증자로 희석된 장 고문 측 우호지분은 33.22%에서 31.57%로 줄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영풍 경영진이 '독립경영 체제'라는 동업자간 불문율을 깨고 경영에 간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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