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돌파 어리둥절… ‘K오컬트’ 개척 기쁨·부담감 느껴"
2024.03.25 18:24
수정 : 2024.03.25 18:54기사원문
천주교 구마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2015)과 오컬트의 외피를 걸친 미스터리 종교 스릴러 '사바하'(2019) 그리고 무속신앙과 아픈 역사를 담은 '파묘'(2024)까지 한우물만 팠다. 'K-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장재현 감독(43)이 자신의 세 번째 영화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올랐다. 특히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당시 44세)의 기록을 경신하며 최연소 천만 감독이 됐다.
'파묘'는 개봉 32일째인 지난 24일 1000만1642명을 기록하며 역대 개봉작 가운데 32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한국 영화만 놓고 보면 23번째다. 특히 전통적 비수기로 꼽히는 설 연휴 직후인 2월 22일 개봉한 데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오컬트 장르로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 완성도 있게 만들 것"
장재현 감독은 1000만 흥행에 "어리둥절한 기분"이라며 "주변에서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해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흥행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것 같다"면서도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꽤 오락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초심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모든 장면이 재밌고 관객이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완성도 있게 만들려고 했는데 운이 좋았다. 배우들의 호연이 큰 몫을 했고 마케팅도 좋았다"고 부연했다. 자신만의 길을 인정받았다는 지적에는 "기쁨과 함께 부담감도 존재한다"고 답했다. 이어 "차기작이 한 400만 들면 성공한 건데, 기자들이 전작보다 아쉽다고 쓸까 봐 걱정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앞으로도 오컬트 무비를 만들 것이라는 그는 "연출 장르가 한정돼 있다 보니 안으로 더 파고들려는 습성이 있다"며 "근데 그게 제 생명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번 영화는 (험한 것이 실체화 돼 나오는) 뒷부분보다 앞부분이 대중적이라고 봤고 장르 마니아들은 뒷부분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며 "이 영화로 얻은 교훈은, 대중과 마니아를 구분하는 등 관객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잘 만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봄' 역시 기존 흥행공식과 다른 영화라는 점을 언급하며 "'서울의 봄' 흥행이 한국 영화계에 큰 생명줄이 됐다. 특히 영화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봄'과 '파묘'는 소재의 특수성과 영화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과 '밈'을 양산했다. '파묘'는 개봉 후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캐릭터 이름과 0815 번호판, 포스터에 사용된 글씨체까지 영화 속 '항일 코드'가 주목받았고 무속신앙에 대한 관심도 이끌어냈다. 장 감독은 "영화의 핵심에 점점 다가가는 현상을 좋게 본다"며 "무속이나 한국의 장례법 등에 대한 관심은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스터에그(숨겨진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숨겨놓거나, 사상 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서브텍스트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장르적 재미에 집중했다. 하지만 관객들의 파고들기 덕분에 영화의 생명력이 길어져 행복하다"며 기뻐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 종교는 평범한 사람들 마음 속에"
앞서 그는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시나리오 작업 중 우연히 독립기념관을 들른 게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감히 제가,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소환하고 싶었다. 우리 땅을 상처가 많고 트라우마도 많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상처를 다 꺼내고 싶었고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나마 후련함을 느끼기 바랐다"고 부연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로 상징되는 쇠말뚝 괴담에 대해선 "그것이 있다, 없다에 초점을 두기보다 그걸 꺼내서 없앴다는 게 중요했다"고 답했다.
오컬트 장르를 고수하는 이유는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결과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영혼도 중요한데, 너무 홀대받지 않나 생각한다"며 "(독실하진 않지만 계속 교회에 다닌다는 그는) 교회에서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은 교회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벽 기도 가는 우리 엄마 마음에도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할을 한 엄마 대신 엄마처럼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전했다. 그는 극중 한 소년이 죽은 할머니의 틀니를 갖고 있는 설정을 언급하며 "그건 내 이야기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날 어디선가 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산업적으로도 극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이 맛에 영화 한다'며 좋아했다. 집에서 혼자서 영화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꽉찬 극장의 열기, 같이 웃고 소리 지르고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을 공유하는 재미, 그 열기가 떠오른 게 얼마 만인가 하며 상기됐다. 곧 '댓글부대'가 개봉하는데 이 열기가 이어지길 바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