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850억 받아간 '배부른 거대 양당'
2024.03.25 18:34
수정 : 2024.04.09 17:10기사원문
올해 정당에 지급하는 혈세는 1000억원이 넘는다. 유권자 4399만명이 1인당 1141원(경상보조금)을 낸다. 4월에 총선도 있어 올핸 같은 액수(선거보조금)로 한번 더 낸다.
하나씩 뜯어보자. 정당보조금은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다음해인 1980년 개헌으로 명시됐다.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는 헌법 제8조 3항이다. 같은 해 12월 정치자금법이 전부 개정됐다. 이후 현재까지 교섭단체 보조금 50% 배분(1997년), 물가 반영 계상단가(2008년) 등 보조금 관련 정치자금법은 13차례 개정됐다. 정당에 지급된 국고 보조금은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간 총 1조4464억원에 이른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 1981년 이후 20년간 지급액을 더하면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당보조금은 정치·선거 활동을 촉진하는 민주적 의미의 순기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44년 전 제정 이후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정당보조금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정당의 보조금 과잉 의존이다. 당원들이 매달 내는 최소 당비가 1000원인데, 당비 총액 비중(정당 재정의 20%선)보다 정당보조금(30%)이 더 많다.
둘째, 국민 세금이지만 감시가 어렵다. 여야가 한해 150억원 정도 되는 인건비부터 사무용품, 사무소 유지비, 공공요금 등으로 쓰고 있다. 법에선 보조금 55%를 정책연구소, 시·도당, 여성·청년정치 발전에 지출하라고 규정돼 있다. 이렇게 지출한 내역은 매년 2월 정당회계 보고 때 포함하면 끝이다. 지금껏 제대로 된 감사조차 없었다.
셋째, 거대 양당의 기득권 강화라는 부작용이다. 올 1·4분기에 더불어민주당(55억원), 국민의힘(50억원)이 경상보조금 총액의 84%를 독식했다. 이 정도 돈을 올해 3차례 더 받는다. 여기에다 25일 정당보조금과 동일한 502억원을 선거보조금으로 한번에 받았다. 민주당, 국민의힘이 위성정당과 함께 각각 217억원, 205억원을 가져갔다. 전체의 84%다. 위성정당 의원 꿔주기, 보조금 따먹기 구태가 계속되는 이유다. 합당 열흘 만에 해체된 개혁신당 보조금 '먹튀' 논란도 같은 이유다.
그간 정당보조금 개혁 목소리는 작지만 이어졌다. 선관위가 수차례 득표 수 비율에 따라 보조금을 배분하자는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냈다. 정치권에선 "정당의 비대·관료화"라며 국고보조금을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2017, 2022년)도 나왔다. 득표율 비례 보조금 배분(2016년), 위성정당 국고보조금 절반 삭감(2023년) 개정안도 있었다. 모조리 폐기됐다.
후퇴하는 정당정치는 '고비용 저효율'이다. 소수 파벌이 지배하는 팬덤정치로 정당은 사당(私黨)화 됐다. 새 정책과 인물은 실종됐다. 혈세로 때마다 곳간을 채워주는데, 이런 '배부른 정당'이 아쉬울 게 없다는 것이다. 정당이 국민에게 더 다가가도록, 더 절실하게 정치를 하도록 바꿔야 한다.
우선 현재 정당보조금은 과도하다. 총액 상한을 현재의 절반 이하로 대폭 삭감할 필요가 있다. 유효득표 수와 정당 수입에 따라 배분(당 자체수입 초과지급 불가)하는 독일의 보조금 제도 등 선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락에 상관없이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지급하는 선거보전금도 혈세의 중복 지급이다. 폐지하는 게 옳다. 보조금 지출 내역의 상시 공시를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감사도 받아야 한다. 필자는 한달 전 정치신인 한동훈이 꺼낸 5대 정치개혁안을 주목한다는 칼럼('낙타 쓰러뜨리기')을 쓴 바 있다. 이 개혁안에 정당보조금은 빠져 있다. 이를 포함해 22대 국회가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보조금 제도를 제대로 개편하길 바란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