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외국어문학
2024.03.26 18:24
수정 : 2024.03.27 08:40기사원문
대학이 사회 변화와 학생 수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지만, 학과나 전공을 없애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은 교육기관임과 동시에 연구기관이며, 특히 기초학문의 유지·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이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설립 목적이나 인재상에 따라 특정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는 (직업)교육 기능에 집중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당초의 설립 목적이나 인재상과 다르다면 먼저 대학 구성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여기서 '대학'이 지시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총장과 보직자들은 종종 대학 운영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믿고 그 권한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학생과 교직원은 대학의 주인을 자처하며 자기들이 대학 운영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립대학에서는 이사회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대학 운영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헌법이 대학에 자율성을 보장한 것은 대학의 일을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 혹은 특정 기구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대학 구성원들이 같이 상의해서 결정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학의 자율성과 상보 관계에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학술 정책과 인재 양성 정책이다. 국가는 다양한 학문 분야가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학문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됨으로써 학문이 융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수한 인재가 사회의 여러 분야에 골고루 진출함으로써 국가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대학과 함께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의 큰 그림을 그리고 대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인문학의 위기'로 인해 외국어문학과는 급격하게 위축되어 이제는 학문후속세대 고갈의 문제까지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서 최근 5년간 학과 수와 입학정원이 5분의 1씩 줄었다.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 관련 학과도 이런 추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한때 우리나라 학문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 두 학문 분야가 소멸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독일이 여전히 세계 4대 무역 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의 학문과 문학 그리고 예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이 두 언어문화권의 언어, 문학, 문화에 대한 연구와 교육 기능이 소멸되어 가는 것은 학술 정책의 측면에서나 인재 양성 정책의 측면에서 모두 부당하고 불합리하다. 이것은 해당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이므로, 국가는 더 늦기 전에 이 두 학문 분야를 포함하여 위기에 처한 외국어문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여 대학과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독어독문학과 교수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