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김규리 “프로그램 폐지 통보받은 그날...펑펑 울며 읽었죠”
2024.03.28 09:09
수정 : 2024.03.28 09:0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감독님이 시나리오 쓸 때 제가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 ‘김규리의 퐁당퐁당’을 즐겨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목포 올 로케라서 시간이 안 맞아서 못할 것 같아 대본을 읽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방송국에 출근했는데 프로그램이 일주일 뒤에 폐지된다는 거예요. 헛헛한 마음으로 귀가했는데 책상 위에 ‘1980’ 대본이 눈에 들어왔죠.”
그렇게 아무런 정보 없이 읽은 ‘1980’ 대본은 배우 김규리의 눈물샘을 제대로 뽑았다. 극중 중국집 화평반점의 맏며느리이자 둘째를 밴 철수 엄마를 연기한 김규리는 “철수와 영희, 두 아이의 세상 이야기로 시작해 귀엽다고 생각하며 읽다가 엄청 울었다”며 “(1980년) 5월 17일 화평반점이 개업하고 다음날 그런 일이 벌어지면서 5월 27일까지 1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읽으면서 너무 놀랐고 눈물도 아주 많이 흘렀다”고 돌이켰다.
앞서 ‘1980’의 강승용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소시민들의 이야기"라며 "투사나 영웅, 전사가 아니라, 민주항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1980’은 전남도청 뒷골목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대가족 이야기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군인들로 인해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렸다. '실미도', '왕의 남자', '사도', '안시성' 등에서 미술감독을 맡았던 강승용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역사학자 황현필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1980'에 대해 "광주 시민의 아픔을 잔잔하게 녹여낸 영화"라고 호평했다. 유시민 작가 역시 시사 후 “영화 보는 게 힘들었는데 힘들게 해서 잘 만든 영화인 것 같다”라고 평가하며 “저 때를 직접 보지 않은 젊은이들한테도 이런 감정이나 생각이 좀 전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 목포서 촬영 "동네 어르신들이 친근하게 대해줘 행복했던 시간"
영화는 광주 대신에 목포 구도심에서 한달 반 가량 집중해 찍었다. 김규리는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1:1 과외를 받았는데, 현장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수다 떨면서 많이 늘었다”며 “화평반점 세트 건너편에 평상이 하나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거기서 촬영도 구경하고 주전부리도 많이 나눠주셨다”며 그때를 즐겁게 떠올렸다.
“세트에서 숙소로 걸어다니는 저를 보고 (임산부 역을 위해 찬 복대를 뺀 모습에) 배는 어디에 갔냐고 농을 치기도 했죠. 저를 동네 일원으로 받아주고, 친근하게 대해줬죠."
극중 아무리 힘들어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던 김규리는 나와 이웃 가족에 닥친 비극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된다. 우는 장면이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드라마 ‘유리구두’ 촬영 할때부터 눈물 연기는 극적 상황과 인물들 관계를 생각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며 "그러면 눈물이 쏟아졌다. 이번에도 영화 속 상황에 나를 집어넣었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답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약 억울한 일을 켰었는데, 누가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울어주면, 힘이 날 것 같았죠. 이 영화 같은 경우, 제가 연기한 철수 엄마가 정말 많이 울잖아요.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앞으로를 살아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상 포인트를 묻자 그는 “엔딩 크레티드가 올라가며 노래가 나오는데, 마지막까지 봐주시면 여운이 깊이 느껴질 것 같다”며 “모든 것은 관객의 몫인데, 각자 원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규리는 2021년 '김규리의 퐁당퐁당' 폐지 이후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면서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간간이 취미로 그림을 하다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곧 삼청동에 있는 한벽원미술관에서 한국화 3세대 작가와 함께하는 ‘물결’ 단체전에 참여한 뒤 오는 5월 9일에 개막하는 서울아트페어에 참가한다.
그는 “2022년이 임인년이라서 호랑이 주제 전시회에 참여했었다"며 "이번에는 멸종된 한국산 늑대와 표범을 주로 그렸다. 제가 배우라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눈에 감정을 담으려 노력한다. 수천 수만번 (그림 속 동물과)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소통하며 그린다. 팬들이 제가 그린 동물은 무섭지 않고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시더라”며 즐거워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