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3조 추가 투자의 절박함..."C커머스 잠식에 생존 위협"

      2024.03.29 13:50   수정 : 2024.03.29 13:5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쿠팡이 앞으로 3년간 3조원을 투자하고 2027년까지 전국민 5000만명을 대상으로 무료 로켓배송을 확대하겠다고 나선데 대해 유통 업계는 "쿠팡의 절박감이 제대로 표출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전 세계 1위 이커머스 사업자인 알리바바그룹이 매출, 영업이익, 시가총액 등 모든 면에서 쿠팡을 압도하는데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시장의 장악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추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차이나 커머스'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유통업계에서 차이나 커머스에 대한 우려가 커져온만큼, 쿠팡은 앞으로 더 크게 닥칠 위기를 대비해 추가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쿠팡 10년간 누적손실 6조 낼 때, 알리는 150조원 이익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27일 3년간 3조원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다. 경북 김천과 대전, 울산, 충북 제천 등 전국 8개 지역에 물류센터를 일제히 건립해 운영하고 2027년까지 전국민 5000만명을 대상으로 무료 로켓배송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약 182개 시군구(전체 260개)에서 로켓배송을 운영하는 쿠팡은 앞으로 230여개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늘어나는 대부분 지역은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들이다. 특히 인구소멸위험 지역 '고위험'에 속하는 곳에도 물류 인프라를 확대키로 했는데, 이들 지역은 수익성이 높지 않아 통상적인 오프라인 유통업체나 대형마트가 진출하기 어려웠다.

쿠팡의 발표는 중국 알리바바가 국내 시장에 3년간 1조4400억원(11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발표 2주 만에 나온 것이다. 알리바바는 2억달러(2600억원)을 투자해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고, 소비자 보호(1000억원) 등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알리의 지난달 월간 사용자 수는 818만명으로, 전년 동월(355만명)과 비교해 130% 성장했다. 알리가 대부분 차지하는 중국발 직구금액은 지난해 23억5900만달러(3조1000억원)으로 58.5% 늘었는데, 최근 추가 투자로 직구규모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쿠팡이 6조원의 누적적자 끝에 첫 영업이익 흑자를 낸 첫해 알리의 2배가 넘는 3조원 투자 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6조2000억원을 투자한 쿠팡의 앞으로 3년 투자규모는 연 단위로 볼 때 훨씬 크다.

문제는 알리바바의 한국시장 1조5000억원 투자 규모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240개국에 진출한 알리바바는 매출·시가총액·영업이익률·보유현금 등 모든 면에서 쿠팡을 압도하고 얼마든지 추가 투자가 가능하다. 알리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70조원(1264억달러), 23.3조원(173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쿠팡 매출(31조8298억원)과 영업이익(6174억원)의 각각 6배 이상, 38배 이상이다. 영업이익률로 볼 때도 쿠팡(1.9%)보다 알리(13.7%)가 7배 높다. 알리바바가 지난 10년간(2013~2023년) 누적 당기순이익만 152조원을 낸 반면, 쿠팡은 매해 손실로 6조 적자를 냈다. 알리바바의 한국 시장 1조5000억원 투자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쿠팡이 신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중국 거대 유통 공룡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대만에도 진출한 쿠팡이 중요한 교두보인 한국을 그대로 내주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알리, 막대한 자금으로 유럽·브라질 시장도 잠식

알리바바는 지난 2010년 초중반부터 유럽과 남미 등 전 세계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서유럽 시장 점유율은 4%(2022년)로, 1위 아마존(20%)을 가파르게 쫓고 있다. 영국·마드리드·프랑크푸르트 등 여러지역에 물류센터를 지었고 네덜란드·프랑스·스페인 등 대부분 유럽 소비자들이 직구를 받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의 이커머스 점유율은 20%에 육박하고, 월간 사용자만 3500만명이 넘는다. 인구가 2억명이 넘는 브라질에는 2013년 진출해 메르카도리브레(Mercado Livre), 아마존에 이어 이커머스 점유율 3위(약 20%)에 올라있다. 알리바바는 2025년까지 브라질 10개 도시에 9개 배송물류센터를 추가로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알리바바의 해외 매출은 지난 2013년 41억6000위안(7612억원)에서 지난해 692억400만위안(12조8497억원)으로 1600% 늘어났다.

알리 익스프레스는 한국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진격 중이다. CJ제일제당 등 한국 업체를 대거 입점시키는 'K-베뉴'를 비롯한 가전과 식품, 가공식품 카테고리를 늘리며 수수료 면제를 선언했고, 대형 가구와 가전을 무료 배송하는 '대형 상품 특송' 서비스도 출시했다. 아직 쿠팡과 비교해 배송속도(4~5일 이상)는 느리지만, 물류센터를 대거 확충할 경우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중순 국내 상륙해 월간 사용자 수가 500만명을 돌파한 테무(Temu), 미국에서 상장해 100조원 조달을 목표하는 패션 이커머스 쉬인(Shein) 등이 한국에 상륙하면 '차이나 커머스'의 잠식력은 높아질 수 있다.

국내 유통업계 안팎에서도 차이나 커머스에 대한 위협론이 커지고 있다.
28일 이마트 주총에서 강승협 이마트 주주총회 의장(신세계프라퍼티 지원본부장)은 알리·테무의 공세를 걱정하는 주주들에게 "새롭게 창업 한다는 각오로 전 임직원이 경영 쇄신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GS리테일의 허연수 부회장도 지난 21일 주총에서 "중국 이커머스는 온라인 채널에 가장 먼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중국 온라인 플랫폼의 진출이 가속화하면서 쿠팡 등 국내 토종 이커머스 매출이 잠식당하고, 소매 유통 질서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온라인 유통의 주도권을 내주면 제조와 물류, 서비스까지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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