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부족한 트럼프, 바이든과 박빙...'큰손' 확보 혈안
2024.04.04 05:00
수정 : 2024.04.04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반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자금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가운데 경쟁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지지율을 빼앗기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을 지지했던 '큰손'들이 트럼프에 손을 내밀지 않는데다, 재판 비용으로 막대한 돈이 빠져나가 광고 및 유세에 쓸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점진적으로 트럼프 앞서
미 시장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1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등록 유권자 6018명 가운데 44%는 오늘 당장 대선이 열린다면 바이든을 선택한다고 답했다.
3일 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진행된 여러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의 평균 지지율이 45%로 동률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바이든의 평균 지지율은 지난해 1월 44%로 트럼프(41%)를 앞섰지만 이후 계속 하락해 지난해 9월 43%로 트럼프에게(44%) 추월당했다. 바이든은 당시 우크라이나 지원 및 예산안 처리 실패 등으로 국정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었다. 반면 트럼프는 지난해 8월 역대 대통령 출신으로는 최초로 범인 식별 사진(머그샷)을 촬영하면서 정치적 박해를 받는다는 이미지를 굳혀 인기를 끌었다.
올해 트럼프는 2월 기준 약 3%p 차이로 바이든을 앞섰지만 지난달 12일 공화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 자리를 확정하면서 급격하게 힘이 빠졌다. 바이든의 평균 지지율은 지난달 19일 45%를 기록해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트럼프(44%)를 다시 앞질렀으며 현재 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지난달 7일 임기 중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1시간이 넘는 연설을 통해 고령 논란을 잠재운 뒤, 자신의 임기 중 성과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는 같은 달 자신이 낙선하면 미국이 "피바다"가 된다는 등 막말을 쏟아내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공세 강화
양 진영의 표면적인 변화는 광고 및 유세다. 81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은 자신의 나이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지난달 9일 3000만달러(약 405억원) 규모의 광고를 공개하고 6주 동안 7개 경합주에서 방송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 연설 이후 지지율 반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개주에서 유세를 벌이며 왕성한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바이든이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2월 29일까지 모금한 정치 자금은 1억1473만4347달러(약 1548억원)였으며 같은 기간 선거 운동 지출액은 4550만9923달러(약 614억원)로 집계됐다. 2월 29일 기준으로 보유한 여유 현금은 7101만1920달러(약 958억원)로 확인됐다. 미 CNN은 지난달 10일 자체 분석을 토대로 미 인공지능(AI) 산업 및 가상자산 업계의 대형 후원자들이 바이든 캠프에 거액의 정치 자금을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경우 지난달 공화당 대선후보 확정 이후 여러 소송 때문에 법원을 드나들고 있으며 대규모 유세 대신 자신이 창립한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FEC 집계에 의하면 트럼프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2월 29일까지 9555만3698달러(약 1289억원)를 모금했으며 같은 기간 6503만6111달러(약 877억원)를 지출했다. 수중에 남은 현금은 3353만8489달러(약 452억원)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FEC에 등록된 자금을 포함해 공화당 및 우파 관련 단체 등 각종 친(親)트럼프 단체가 지난해 모은 돈을 전부 합하면 1억9000만달러(약 2565억원) 상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금액 가운데 최소 5000만달러(약 675억원)가 트럼프의 재판 비용에 쓰였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88건 혐의로 4차례 형사 기소됐고 최근 민사소송에서 2차례 패소했다. 그는 지난달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9160만달러(약 1236억원)의 공탁금을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 납부했으며 이달 1일 부동산 사기 대출 소송을 위해 같은 법원에 1억7500만달러(약 2367억원)의 공탁금을 또 냈다.
'큰손'들, 트럼프에게 돌아가나?
이번 대선에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모금 운동에 참여했던 스콧 리드 공화당 전략가는 FT에 "돈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선거 운동 전체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고 지적했다. 물론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적은 돈을 모았지만 힐러리를 꺾었다. 바이든 역시 지난 2020년 대선에서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 이상을 모았으나 트럼프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FT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에 돈을 대던 미 금융가의 부자들이 트럼프에게 인색하다고 분석했다. FT에 의하면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시타델의 창립자 켄 그리핀을 비롯한 미국의 유력 금융인 4명이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맞섰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에게 지원한 돈만 최소 1300만달러(약 175억원)였다. FT는 금융가 큰손들이 트럼프가 후원금을 재판 비용으로 쓸 까봐 지원을 머뭇거린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금융권에서는 수입품에 10%의 공통 관세를 물린다는 트럼프의 공약에 반대한다. 트럼프의 돈줄이 된다고 여겨졌던 트루스소셜의 모회사 주식 가격은 지난달 나스닥 상장 직후 50% 가까이 뛰었으나 이달 들어 지난해 순손실 공시가 발표되자 20% 넘게 추락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트럼프 진영에서는 기상천외한 모금 방법이 쏟아졌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머그샷으로 캐릭터 카드를 출시하고 머그샷 촬영 당시 입었던 양복을 잘라 함께 팔았다. 지난 2월에는 '트럼프 운동화'를 팔았으며 지난달에는 '트럼프 성경책'도 판매했다.
한편 트럼프의 자금난이 곧 끝난다는 관측도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9일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외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주요 후원자들이 결국 트럼프와 접촉중이라고 전했다. 과거 트럼프을 정면에서 비난했던 미 투자사 트라이언파트너스의 넬슨 펠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트럼프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트럼프의 조찬 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모임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참석했다고 알려졌다. 경선에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후원했던 네바다주 호텔 재벌 로버트 비글로는 이미 트럼프에게 100만달러를 후원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재선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석유 재벌 해럴드 햄 역시 지난해부터 트럼프 진영에 후원을 재개했다.
WP는 공화당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이 모두 무너지면서 주요 공화당 후원자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보험 차원에서 트럼프를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바이든이 25%에 달하는 '백만장자 세금' 신설을 주장하는 만큼 공화당 큰손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