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더 이상 의사결정자가 아니다
2024.04.04 18:06
수정 : 2024.04.04 18:06기사원문
영국 최고위직 여성 소방관이자 심리학자인 사브리나 해턴은 '소방관의 선택: 생사의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전 리더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인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혼돈의 상황에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고민을 반복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한 리더의 마음가짐을 연구한 해턴은 '리더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알 수도 없고, 처리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사결정 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결정을 다시 한번 의심하라고 조언했다.
리더의 의사결정은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모든 리더들이 항상 합리적이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리더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거라 착각하는 잘못된 합의효과, 자신은 절대 틀릴 수 없다는 확증편향, 구성원에 비해 자신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기 고양적 우월감, 자신한테는 항상 행운만 따른다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통제 불가능한 외부환경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통제의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리더가 이러한 착각에 빠지면 독단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거나,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형식적인 의견수렴에 그치고 자기 뜻대로 결론을 내린다. "경험도 부족한 친구들이 뭘 알겠어…"라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예전에 다 해봤어, 이름만 다르지 전에 있던 내용이랑 다를 게 없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결국 구성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려는 동기는 사라지고 리더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타율적 조직문화가 형성되면서 점차 새로운 경영환경에서 도태되게 된다.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신이 내린 판단을 과대평가한다"고 했다. 또한 '에고노믹스'의 저자인 데이비드 마컴은 "자신감이 지나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고도 했다.
조직행동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탠퍼드대 칩 히스 교수는 '자신있게 결정하라'에서 '리더의 직관보다 체계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6배나 더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고 강조하면서, 바람직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4단계로 정리했다. 먼저,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여러 다른 선택안을 찾고, 냉철한 분석으로 모든 대안을 검증하고, 최종안을 확정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선택안과 심리적 거리를 두고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외부 관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리더가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이제 리더가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생성형 AI로 새롭게 재창조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다양한 생각을 빠르게 연결하고 융합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리더는 전체 조직 구성원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집단지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의사결정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집단지성 플랫폼이 리더에게 부여된 새로운 미션인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