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마약류 진단키트 상용화되면 '퐁당 마약' 줄어들 것"

      2024.04.16 11:37   수정 : 2024.04.16 11:3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이거 보세요. 지금은 맹물에 담갔으니까 리트머스 종이가 반응을 안 하지만, 마약류가 첨가된 액체에 담그면 리트머스 종이가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지난 3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만난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약학박사)는 자신의 연구팀에서 만든 휴대용 마약류 진단키트인 '필스크린'을 기자 앞에서 시연했다. '필스크린'은 정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2022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용 마약류 진단키트다. 필로폰, 엑스터시(MDMA), 코카인, 펜타민, 케타민 등 10여종류의 마약류를 검출할 수 있다.

정 교수는 필스크린이 상용화되면 '퐁당 마약'(술잔, 음료잔 등에 타인이 몰래 타는 마약)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일선 경찰관들이 마약류 흡입 현장을 적발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변·모발검사법 만든 '마약류 검사' 1세대
정 교수는 마약류 검사 분야의 1세대 연구자다.
현재 검찰이나 경찰이 쓰는 소변검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이 수행하는 모발검사 방법도 모두 정 교수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국과수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를 내 손으로 발명한 것이 내 인생에서 국가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일각에서는 소변검사가 세계 각국에서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데 널리 쓰이는 것이므로 이것을 정 교수가 '발명'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소변검사를 마약류 검사로 이용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또 각 국가마다 흡입하는 마약류의 취향이 다르다 보니 타국의 기술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기 힘들다.

정 교수는 "소변검사 기술을 개발한 것이 1985년이다. 그 당시 한국의 주류 마약류는 필로폰이었지만, 미국의 주류 마약류는 헤로인과 코카인이었다"면서 "이같은 이유에서 미국의 소변검사 기법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올 수 없었다. 꼬박 2년 동안 실험용 쥐를 이용해 소변에서 마약류를 검출하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한국 실정에 맞는 소변검사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변검사는 한국의 마약류 범죄 상황의 변화를 생각했을 때 적기에 개발된 '신의 한 수'였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85년 이전의 한국은 마약 소비나 유통은 미미했고 주로 생산 거점으로 쓰였다고 한다. 마약사범들이 일본에 밀수하기 위한 필로폰을 제조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1985년에 한일간 경찰 공조 체제가 형성되면서 국내에 제조 거점을 잡은 마약 조직은 일본으로 필로폰을 수출하기 어려워졌다. 일본 수출길이 막힌 마약제조업자들은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이에 따라 필로폰이 국내에 유통되면서 국내에도 마약 투약자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정 교수의 소변 검출 기술이 적기에 개발되면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은 현장에서 빠르게 마약 사범들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마약사범 증가세를 막는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모발검사는 소변검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3년에 개발됐다. 정 교수는 "소변 검사의 경우 3~4일 전에 투약한 것만을 확인할 수 있어 오래전에 마약류를 투약한 사람은 색출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이같은 문제점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지적했고, 이에 모발검사법을 배우러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하였듯 한국의 마약류 취향이 다르다 보니, 이를 내재화하는 작업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다.

마약류조기경보시스템·마약류투약현황통계 구축해야
정 교수는 현재 국제연합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정 교수는 이 직을 수행하면서 한국에 마약류조기경보시스템가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마약류조기경보시스템이란 현재 자국에서 어떠한 마약류가 발견됐는지를 유관기관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UNODC에 가면 각국의 마약류조기경보시스템이 공유한 정보 등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발견된 마약류들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에는 이같은 마약류조기경보체계가 마련되어있지 않다. 마약청 같은 통합 부처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약류조기경보시스템은 경찰과 검찰, 세관은 물론 부검실, 응급실 등까지 포괄하면서 범정부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면서 "부검실과 응급실이 필요한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놓칠 수 있는 마약류 투약 현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 마약류 투약 현황 통계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적발된 마약사범에 대한 통계가 있을 뿐 전체 마약 투약자에 대한 통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현재 대검찰청에서 집계하는 마약류 사범 통계가 있긴 한데, 이는 검찰에 의해 검거된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한국에 마약류가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파악할 수는 없고, 또 검찰과 경찰 등 수사 기관에서 수사를 강화하면 사범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면서 "전수조사를 하면 제일 좋겠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익명성을 보장한 상태에서 표본조사를 해 대략 국민의 몇 퍼센트가 마약류에 중독돼 있는지를 알아야 증거에 기반한 마약류 수사·예방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전했다.

국과수의 초대 원장까지 지닌 정 교수는 이제 교육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걷고 있다. 이미 충남대에서 6년, 성균관대에서 4년 총 10년을 대학교 교원으로서 살아왔다.
그는 "국과수에서 32년간 봉직하며 터득한 정보·지식을 후배 세대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 위치에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이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연구자로서 혹은 교육자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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