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집착 않겠다는 정부, 의료계 속히 호응해야
2024.04.08 18:07
수정 : 2024.04.08 18:07기사원문
꿈쩍 않는 의료계와 대치국면을 풀기 위해 한발 물러선 정부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2000명 규모까지 논의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정부는 그만큼 대화로 파국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2000명 증원 계획을 조정할 경우 상당한 혼란도 예상된다. 대학별 배정을 이미 끝냈기 때문에 이를 철회하거나 축소하면 학교별 차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복지부 차관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의대 증원은 5월 하순 공고되는 대학별 모집요강에 최종적으로 반영된다.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양보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의료개혁 전체가 후퇴해선 안 될 것이다. 의대 대규모 증원의 필요성은 이미 수많은 전문가의 연구를 통해서도 검증된 사안이다.
왜곡된 의료수가, 열악한 전공의 처우, 붕괴 직전인 필수·지역 의료 등의 문제는 이제 미룰 수 없는 국가과제가 됐다. 정부의 의료개혁 출발점도 여기였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개선하지 않으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생명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계속 벌어진다.
건보재정 개혁도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정부는 이날 과잉의료를 부추기는 실손보험 지급체계를 개선해 건보재정 낭비를 막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실손보험은 질병·상해 치료 시 보험가입자가 낸 의료비를 보험사가 보상해 주는 보험이다. 하지만 실손보험은 의료 과소비를 유발하고, 비급여 진료시장을 키워 건보재정을 망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비급여 항목이 많은 피부과, 성형외과에 의사들이 몰리고 필수의료 분야는 기피대상이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건보재정이 눈먼돈이 되지 않게 제어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 사법리스크 경감방안도 논의가 필요한 주제다. 누구보다 의료계가 이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의료계가 정부안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할 차례다. 정부의 여러 유화 메시지에도 의료계 내부에선 여전히 강경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심지어 대통령을 일진에 빗대 "일진에게 엄청 맞은 우리의 전공의 아들들을 교수들이 지켜내자"는 식의 막말까지 나왔다.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으로 불리는 의대 교수가 한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의협 전임 회장은 "이과 국민이 나서서 부흥시킨 나라를 문과 지도자가 나서서 말아먹었다"고 했다. 사태의 본질과 상관도 없고, 의사들의 독선과 아집만 보여주는 말일 뿐이다.
그나마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첫 만남이 의미 있었다고 평가한 의협 비대위가 중심을 지켰다. 의협 비대위는 총선 후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의료계 단일안을 낼 것이라고 했는데, 진전된 내용이길 바란다. 의료개혁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의료계가 손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