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 반도체

      2024.04.09 18:10   수정 : 2024.04.09 18:10기사원문
"일본 전체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TSMC 규슈 구마모토 1공장을 방문,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올리며 "현지 경제성장이나 임금인상, 고용 확대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며 "두 공장에서 고도의 기술전문직 3500명 이상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지독한 저성장의 늪에 허덕였던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경제 변곡점에 서 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정책이었던 '아베노믹스'의 후광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일본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끊어내고, 경제에 다시 온기가 찾아온 건 기시다 정권에서다.

지금에야 '반도체 코리아'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반도체라는 제품이 세상에 처음 나올 때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던 맹주였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여전히 현대 반도체의 원천기술 핵심은 대부분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코리아' 역사의 서막도 일본에서 비롯됐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74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기술자들을 데리고 거의 매주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사정하다시피 기술을 조금씩 배워 왔다. 그렇게 10년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이 64K D램이다. 삼성은 수많은 반도체 중 하나인 메모리에 집중했다. 그 선택은 한국 경제의 코어가 됐다.

일본의 몰락은 1995년부터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다자간무역협상을 근거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되면서 미국 기업들이 국제분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이때 미국은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인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집중했다. 공장 근로자들이 많이 필요한 반도체 제조는 동맹이면서 임금이 저렴한 한국과 대만에 맡기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애플, 엔비디아, AMD 등 미국 팹리스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같은 한국·대만 반도체 제조 분업화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일본은 왜 빠졌을까. 당시 일본은 반도체 왕국이라는 자존심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이 초호황을 누릴 때는 세계 50대 기업의 대부분이 일본 기업이었다. 1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위협할 정도였다. 현지에선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의 땅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일본인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일본은 반도체 분야에서 두 발, 세 발 앞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분업화가 아닌 모든 공정을 사내에서 처리하는 수직적 모델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매년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어야 유지된다. 호황은 버블경제의 둔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30년을 버티지 못한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투자 부담에 짓눌려 자멸했다.

일본 경제는 30년 만에 호황 사이클에 올라탔다. 주식과 땅값은 사상 최고를 찍었다. 물가상승은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고, 또 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이 확인됐다. 조심스럽던 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면서 디플레 탈출 선언도 시간문제가 됐다.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는 일본 1공장 개소에 이어 2공장도 구마모토에 짓는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3공장 건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1공장만 봐도 구마모토 지역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의 경제효과는 2021년부터 10년간 약 9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TSMC의 일본 공장 건설은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 부활과 패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화룡점정이다.
기시다 총리가 TSMC 일본 공장에 10조7789억원(1공장 4760억엔·2공장 7320억엔)을 지원해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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