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편안한 도시" 숨은 보석, 아오모리 속으로
2024.04.20 12:00
수정 : 2024.04.20 15:43기사원문
【아오모리(일본)=김경민 특파원】 일본 열도의 가장 큰 섬인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는 홋카이도에 이르기 전 본토의 마지막 고속열차가 정차하는 역입니다. 한 때는 여객선이 바다 건너 홋카이도 하코다테를 오가곤 했었죠. '푸른 숲(靑森)'이라는 뜻의 아오모리는 '일본에서 가장 편안한 도시'로 꼽히고 있는데요. 지난 3월 찾은 아오모리는 눈이 내렸고, 고즈넉한 산맥과 분위기가 화려한 도쿄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아오모리는 두 면이 바다(동해와 태평양)와 맞닿아 있고 산과 계곡, 호수, 해안 등 천혜의 자연환경이 살아 있습니다.
'아, 그게 여기였어?'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은 이 곳을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첫번째로 찾는 코스인데요.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이 건물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아오키 준'이 미술관 인근에 있는 조몬시대(신석기시대) 대규모 취락지인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 발굴 현장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고 합니다. 2006년 설립된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은 아오모리 지역 예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건설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순백 건물의 미술관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나라 요시토모'와 판화가 '무나카타 시코'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요. 특히 나라 요시토모의 악동 소녀 캐릭터를 보면, '아 이거!'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이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170점가량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미술관의 백미는 역시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인 '아오모리 켄(아오모리 개)입니다. 높이 약 8.5m의 생각에 잠긴 거대한 개 형상 작품은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관람객들은 100이면 100, 귀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거대한 이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미술관 중심부에는 4층 높이까지 천장이 탁 틀인 거대한 '알레코 홀'이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현재 이 곳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이 제작한 발레 '알레코' 무대 배경화 제1~4막이 모두 전시돼 있습니다. 커다란 화폭에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으로부터 장기 대여해 전시 중이라고 하네요.
거대 등불 수레, '네부타 마츠리'
거리를 채운 거대한 등불 수레들이 특징인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입니다. 수백만의 방문객들이 몰려드는 이 축제는 매년 8월 2~7일에 열리는데요. 환상적인 거대 등불 수레를 구경하기 위해 매년 약 300만명의 사람들이 이 곳 축제를 찾습니다. 꼭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네부타의 집 와랏세'에 방문하면 마츠리의 분위기를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네부타의 집 와랏세에서는 수레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직접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축제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수레들이 전시돼 있는데요. 축제가 끝난 후 그 해 가장 잘 만든 수레를 대상으로 시상식을 하고, 수상한 작품들이 이 곳에 전시되는 영광을 안는다고 합니다.
자연 그 하나로, 가보고 싶은 곳
아오모리 남동쪽에는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에서 미야기현 게센누마까지 220㎞에 걸쳐 뻗어 있는 동일본 국립공원 중에서는 유일한 해안 공원인데요. 원래 이름은 리쿠추 해안 국립공원이었지만, 2011년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 이후 몇몇 지역을 추가하고, 복구와 부흥의 상징을 담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신기하게 생긴 톱니 모양의 바위, 만, 바위섬,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요. 제가 찾은 스팟은 국립공원의 북쪽 출발지인 '카부시마 신사'입니다. 이 곳은 수만마리의 괭이갈매기 서식지로 유명한데요. 신사까지 올라가는 길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갈매기 똥을 막기 위해 신사 계단 입구에 우산을 배치한 것이 이색적입니다.
이 곳 신사는 미야기현까지 200㎞가 넘는 산리쿠 공원의 '미치노쿠 시오카제 트레일'의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의 콘셉트와 비슷한데요. 아오모리현이 제주도와 자매 도시여서 그런 걸까요?
또 거친 지형의 시라카미 산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자연유산 너도밤나무 원시림이 압권입니다. 코발트 블루빛 연못 '아오이케'로 유명한 주니코 호수, 특이한 동식물이 가득한 시라카미 산책로, 안몬노타키 폭포도 가볼만 한 곳입니다.
오소레산이 있는 도끼 머리 모양의 시모키타 반도는 일본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황량한 풍경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는 일본의 3대 성소로 꼽힙니다.
사과 사과 사과, 그리고 놋케동
아오모리에서 사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오모리는 일본 최대 사과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갖가지 다양한 품종의 사과를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고요. 도시 곳곳에서 사과 모양의 시설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여기도 사과, 저기도 사과, '사과의 고장'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가 묵은 료칸이었는데요. 그 이름마저도 '호텔 애플 랜드'였습니다. 건물 옥상에 하늘 높이 사과를 들고 있는 거대한 불상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특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저녁 식사 메뉴에는 사과 하이볼이 등장, 결국 사과로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요. 다음 날 온천 탕에는 사과들이 둥둥 띄워져 있었다는 사실.
아오모리 교사이 센터는 저렴한 가격의 신선한 놋케동(해산물 덮밥)으로 유명합니다. 입구 카운터에 2000엔을 내면 12장의 티켓을 주는데요. 도쿄 토요스 시장의 '카이센동'(해산물 덮밥) 보다 저렴한 듯 했습니다. 교사이 센터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티켓을 내고 밥, 국, 각종 해산물을 직접 토핑해 먹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점심을 먹으러 온 젊은 남녀들이 많았는데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MZ세대의 이색 데이트 코스로 인기라고 하네요.
아오모리현 동남쪽 도시인 하치노헤에는 실내 대형 시장인 '핫쇼쿠 센터'가 있습니다. 이 곳에 밀접한 약 60개의 점포에서 해산물, 과일, 육류, 건어물, 과자, 술, 잡화까지 다양한 상품을 한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 늘어선 광경은 우리의 노량진, 자갈치 시장과 비견할 만 합니다. 이 곳을 들렀다면 구입한 식재료를 숯불구이로 먹을 수 있는 '시치린 무라'라는 시설을 꼭 이용해 보세요. 각 점포들은 이 시설에서 쉽게 구워먹을 수 있게 맞춤형, 세트 상품들도 팔고 있는데요. 한국의 '초장집'과 비슷한 이 곳은 이용료를 내면 좌석과 화로, 접시, 젓가락, 물수건, 조미료가 제공되고, 음료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올해부터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인천~아오모리 항공 정기편 노선을 화·목·토요일 주 3회 운항하고 있습니다. 가는편은 오전 10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같은날 오후 12시 50분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합니다. 오는편은 현지에서 오후 1시 55분에 출발해 같은날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합니다. 자, 이제 일본의 '숨은 보석' 아오모리로 갈 준비가 되셨나요?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