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으로 이뤄진 해변이라고?.."붉은 모래 해변을 찾아라!"
2024.05.03 08:23
수정 : 2024.05.03 11:30기사원문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이칼에서 두번째로 가고싶은 곳은 1시간반 거리의 붉은 모래(Red sands).
바이칼의 호숫가는 거의 자갈강변인데 특이하게 이곳만 보석류인 석류석모래로 이루어져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궁금해져서 보러 가기로 했다.
고장난 차 발견.."오, 우리가 러시아 청년 도와줄 차례"
레드 샌드로 가던 중, 길옆에 비상등을 켜고 서있는 차와 청년들이 보였다. 설까말까 망설일 새도 없이 탄이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우리차를 보고 한국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과 캠핑카 여행자인줄 알아차리는 러시아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일이 친절히 응대하지는 못해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돕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딱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일행 중 마침 알렉산더라는 영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통이 가능했다. 차를 견인해 가까운 마을의 정비소까지 이동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행히 그 친구들에게 견인줄이 있어서 까브리 뒤쪽에 줄을 매달 곳을 찾아 연결할 수 있었다.
다른 차를 달고 운전하기는 탄이도 생전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은 워낙 시스템이 잘 돼있어 이럴 일이 없지만 여기선 흔한 일인것 같다.
이들은 이르쿠츠크에 사는 4명의 친구들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려고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은 차에 4명이 타고 짐까지 가득 싣고 있었다.
우리차 앞자리에는 붙어 앉으면 3명까지 탈 수가 있어서 고장차와의 소통을 위해 알렉산더가 우리차에 동승했다.
안전을 위해 40km이하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시간은 두배 이상 걸렸지만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고장 차량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가는 동안 알렉산더와 왓츠앱등록도 서로하고 우리의 여행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게 되면 우리에게 꼭 연락하라고 하며 카우치서핑도 추천해주었다.
한참을 달려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 바이칼스크의 한 정비소에 도착했다. 정비소에서 견인해온 차의 시동을 걸어보니 고장났던 차가 다시 움직이는 듯해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또 주행중 멈출 수 있으니 일단 정비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헤어지기 전 우리차와 같은 모터홈이 꿈이라는 네명의 친구들에게 차를 구경시켜주었다. 다들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은 감사의 의미로 다차에서 만든 쨈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다행히 레드샌즈가 그곳에서 멀지않아 바로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이 울퉁불퉁했는데 어찌어찌 잘 도착했다.
호수옆에 약간의 공터가 있어 이곳에서 차박을 했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호숫가에 가보니 역시나 붉은 모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따뜻한 색계통의 잔 모래가 많이 있긴 했는데 보고싶던 쨍한 붉은모래는 사람들이 가져가고 파도가 쓸어가 일이년 전부터 보기 힘들다더니 정말 보통 강변같아 보인다.
환경이 더 파괴되기 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몇일 후 알렉산더로부터 메세지와 사진이 왔는데 우리가 레드샌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고친 후 그들도 레드 샌드를 찾아가 보았는데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도에 나온 곳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보내준 사진의 붉은색 모래가 신기하고 아주 예뻤다. 직접 보지못해 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붉은 모래가 남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준 알렉산더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바이칼에서 서쪽으로 두시간 거리에 이르쿠츠크가 있다. 아마도 바이칼호수를 구경오는 사람들이 도착하는 곳이 이곳일 것이다. 여기도 꽤 큰 도시라 마트에 들러 장을 볼 생각이었는데 소통의 부재로 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어두워질 때쯤 길 옆 한 카페주차장에서 밤을 보냈다. 도로 바로 옆이라 차 지나가는 소리가 커서 걱정이 되었는데 탄이 준 말랑한 귀마개가 아주 효과적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이 좀 있었는데 한번 해보니 이물감도 별로 없고 소음을 꽤 잘 막아줘서 수면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이틀길을 달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도착했다. 가는 길 위에서는 인터넷이 안되서 미리 카우치 요청을 보낼 수가 없었다. 도시에 도착해서야 급히 검색해보고 바실리라는 친구에게 당일 묵어도 되는지 요청을 보내보았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요청이라 무리겠지 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답이 없으면 대충 길가에서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또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를 구경하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웬걸 바실리에게 답이 왔다. 그는 "No problem"이라며 시원스레 주소를 알려주었다.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는 시내 서쪽의 좋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No problem"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바실리
우리가 그의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바로 내려와서 우리 까브리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차내부를 구경하고 무척 흥미로워했다. 함께 계단을 올라가며 우리 짐을 들어주는 등 무척 친절했다. 우리는 신나게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도 표트르처럼 히치하이킹으로 러시아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어 여행자의 힘듦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바실리는 20대 후반의 IT쪽 일을 하는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원래 꿈은 야마카시, 파쿠르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며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송쪽 일을 하고싶어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가 1년동안 제작한 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놀라서 감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가 하루만 머무르고 가겠다고 하자 바실리는 매우 아쉬워하며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구경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사실 차박에 지쳐 쉬고자 들른 것이었지만 친구의 성의에 감사하며 저녁시간에 함께 외출을 나섰다.
차가 있는 폴이란 친구를 불러 우리를 태우고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콘카"라는 곳에 올라갔다.
예니세이강과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가 보이고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강때문인지 도시에 구름이 내려앉은듯 안개가 낀 풍경이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친구 덕분에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싶어 정말 고마웠다.
다음엔 시내의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인 미라, 레닌, 마르크스 거리로 갔다. 그곳에서 바실리의 여자친구 크리스가 합류했는데 마침 광장의 커다란 무대에서 무료콘서트가 진행 중이어서 운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잠깐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룻밤 머물렀지만.. 아름다웠던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추억
걷다보니 전망대에서 봤던 불빛이 아름다운 다리에 왔다. 솜씨 좋은 바실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열심이다. 친구들 모두 어찌나 사려깊던지 춥지않냐며 괜찮다고 해도 옷을 빌려주고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물어봐주어서 너무 고맙고 황송할 지경이었다.
멋진 밤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크리스의 엄마가 만드신 케이크를 같이 먹었는데 과일이 들어있어 새콤달콤 너무 맛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바실리가 아니었으면 차타고 그저 스쳐가는 지역중 하나였을텐데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의 덕분에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바실리는 뭘 도와줄까 물어보고 엄마의 다차에서 가져온 양파며 감자 등을 가져가라며 잔뜩 주었다. 편하게 쉬고 씻고 세탁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커다란 추억을 만들어준 바실리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에 나왔을까, 아쉬워하는 친구와 하루라도 더 같이 보내며 여유 있게 이야기도 나누고 할걸 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 초반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몇가지 선물을 했는데 그중 한국에서 사간 눈오리 집게가 있었다. 그런데 몇달후 겨울에 바실리는 그가 직접 만든 눈오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잘 활용하고 있는 것같아 반갑고 기분 좋았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린 다음날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soydnMxZsg&t=375s>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