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준미주에 밀려 보전되지 못한 과거의 삶…그 결과는 폐촌
2024.04.15 18:34
수정 : 2024.04.15 19:47기사원문
문화정책이 주업인 장관이 순천만국가정원을 보고 '화난' 민심을 들먹였다. 정확한 진단이다. 개인의 '화'는 집단의 '성'으로 진화한다.
'지방소멸'이 키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다. '폐촌'이란 말도 있다. 조어에 능란한 일본인들이 회자하였던 '지방소멸'과 '폐촌'의 결과, 일본의 지방은 소멸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1990년 여름방학을 보냈던 일본의 산촌마을 '유스하라'는 아직도 건재하다. 주민들은 조용히 건강장수를 실천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모든 면에서 속도가 느려진 사람들의 숫자는 그대로이고, 이른바 '슬로 라이프'가 안착하였다. 행정의 노력으로 의료 서비스가 정비되었고, 합병된 학교의 통합 운영으로 교육 서비스도 안정되었다. 의사들은 산골에서 왕진을 다니고, 교사들은 벽지로 전출한다. 의사 한 명에 배당된 환자 숫자와 교사 한 명이 감당하는 학생 숫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파생되는 서비스의 질이 상승하였고, 산골에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벽지로 유입되는 젊은이의 숫자가 노인 사망의 공간을 메운다. 선행 사례로부터 인구과소화가 결코 나쁜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을 학습해야 한다. 도시의 최첨단 의료, 교육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슬로 라이프'의 안정에서 얻어낸 삶의 질이 도시의 소란스러움에서 빚어지는 악질 삶을 능가하는 만족감을 제공한다.
'지방소멸'과 '폐촌'이라는 얘기를 꺼낸 이유는 후발주자의 대표 격인 한국 사회도 '슬로 라이프'를 구가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서다. '하면 된다'는 방식으로 '잘 살게 된' 순풍을 지탱해온 자신감이 있다. 전제조건은 '행/정'의 줄서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간사한 무리들에 대한 심판이다. 미국 농촌과 일본 산촌에 산재한 학교들과 공공건물들은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행사의 거점 역할을 한다. 음악회와 미술전람회가 상시 개최되고, 주민들은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여 행사를 준비하는 주인공들로 참여한다. 축제라는 것이 가수 초빙의 '덩그런' 행사로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다. 시집갔던 새댁이 친정 동네의 축제 참가를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일시 귀향한다. 향토의 과거와 현재의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박물관들은 주민의 살림살이를 온전히 보전하고 과거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보잘것없는 과거라고 살림살이를 내팽개치는 법이 없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안착한 대한민국에서 의료와 교육의 서비스 질은 궁극적으로 행정과 정치의 몫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토착정치와 과잉토목의 결탁으로 줄줄 새는 세금을 생각하면 '행/정' 시스템의 문제일 뿐 경제 문제는 아니다.
현재 한국 농촌의 어디를 가나 허물어져가는 농가들이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자리한다. 수도권 일극화 발전을 추구한 '행/정'의 결과다. 석양에 연기가 피어오르던 굴뚝은 사라진 지 오래고, 푸근하게 다가오던 둥그런 초가와 기왓장 추녀에서 낙숫물 떨어지던 로망스가 자취를 감춘 지는 기억에도 가물거린다. 할머니로부터 물려진 반닫이를 마르고 닳도록 닦던 어머니의 손길은 온데간데없다. 허물어진 농가와 스러져가는 흙담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지방소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폐가의 구석에 자리한 뒤웅박과 깨어진 옹기, 다 뜯겨 나간 봉창이 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살림살이가 아니었던가. 빛바랜 교과서와 아이들의 공책이 찢겨나간 모습으로 뒹구는 마당에 정 붙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조부모, 내 부모가 만들어왔던 고향의 살림살이! 그것이 이 땅의 근대화와 10대 강국의 밑거름이 된 역사라고 구가하는 사람들이 바로 뒤돌아서 우리의 살림살이를 내팽개친 결과가 '지방소멸'이다.
전라도 고흥 땅에서 대대로 팔영산을 바라보며 울릉도까지 노를 저었던 흥양어부의 살림살이가 있었다. 충청도 내포 들녘의 마을에서는 초상집에 동원된 개의 마릿수가 장례 행렬의 규모를 가늠케 했다. 경상도 산골짜기 영양에는 동학의 기운이 일월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정기를 보여준다. 지방마다 가지가지 아름답던 우리네의 살림살이가 획일적인 토목공사와 아파트 건설로 무너져간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라. 따뜻하던 손길의 살림살이가 내팽개쳐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행/정'이 '지방소멸'의 원인이다.
박물관이다, 미술관이다 그런 이름의 시설들이 생기는 족족 고대광실에서 배불리 먹고 기름지게 살던 흔적만을 보여준다. 왕후장상의 살림만 문화유산이라고 세금을 들인 국립박물관만 13개나 된다. 내팽개쳐진 서민의 살람살이를 돌보는 국립박물관은 달랑 한 군데 경복궁에 자리잡았다. 그것도 어느 지방으로 쫓겨갈 운명이란다. 황금만능주의가 정확하게 실천된 곳이 한국이라는 외국 학자의 비판에 부끄러움만 축적된다. 그것이 한국문화라고, 그래서 K팝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자랑한다. 자위 추구의 문화정책은 이제 그만해라. 그만큼 했으면 자위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자위 끝에는 허탈이 있고, 허탈 너머에는 허약이 온다. '금준미주'의 모습만을 유산이라고 생색 내는 거창한 국립박물관들이 스러져가는 살림살이가 내팽개쳐진 모습과 대각점에 있음을 잊지 말라. 일극체제 일변도가 '지방소멸'의 원흉이다. 다극체제가 해결방안의 시동 걸기 역할을 한다. 최소한도 광역지자체에는 한 군데씩 그 지방을 지켜온 서민 대중의 토속적인 살림살이를 보살피고 섬기는 국립박물관으로 보답해라. 주민 중심의 '행/정'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정신으로, 내팽개쳐진 우리네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돌아보고 수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농어촌과 산골의 살림살이가 돌아올 수 있기를 기다려야 한다.
인간만사와 살림살이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 따뜻한 지방이 만들어진다. 차가운 돈잔치로 해결하려는 의료와 교육 서비스만으로는 지방소멸의 추세를 멈출 수가 없다. 주민 중심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살려야 한다. 내팽개쳐진 우리네 살림살이가 '성난 민심'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음을 직시하라. 고향의 따뜻함이 노인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불러온다. 아름다운 살림살이가 안착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조성하자.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 전경수 교수 약력△1949년 출생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인류학 박사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중국 윈난대 객좌교수 △일본 규슈대 객원교수 △대표 저서 '문화의 이해' '환경친화의 인류학' '한국인류학 백년'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