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과 '자살' 사이에 놓친 것
2024.04.18 18:30
수정 : 2024.04.18 18:30기사원문
사흘 전 동료가 해당 소식의 링크를 보냈다. 동료 기자가 말하길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취지야 알겠어, 그런데 자살이라고 쓸 수도 없잖아. 사망하고 자살은 엄연히 다른데."
대한민국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6.0명, 하루 평균 3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 보도는 사건기자 생활을 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문제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는 권고에는 적극 동의한다. 기자가 아닐 때부터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렸다. 자살이 하나의 능동적 선택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다만 기자 입장에서 '사망'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엔 사실을 왜곡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도에 있어 어떤 죽음은 사망 그 자체보다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이 본질에 가까울 때가 있다. 지난해엔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 그랬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터부시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우리나라 배우의 사망 소식을 전한 CNN이나 BBC 등 외국 언론은 Suicide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했다. 외신이 항상 옳다고 볼 순 없지만, 직접적 단어 사용을 피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도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이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자살 보도에 신중하자는 취지는 공감하나 단어 선택이라는 문제에 매몰돼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자살 보도 윤리강령에서 첫 번째는 '언론은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자살 소식을 웬만하면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근데 우리 언론은 어떤가. 공공의 정당한 관심이 대상이 되는 사건을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면서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합리화하고 있지 않나. 앞서 언급한 배우의 사망 소식과 함께 수단까지 전한 언론이다. 언론인들은 이 문제에 지금보다 더 공감대를 가지고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SNS나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새로운 통로가 늘어나면서 자살 관련 정보를 접할 일이 언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 미디어 전문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영화를 문제 삼았다. 그는 "완전히 자살을 미화하는 영화였다. 이제 언론뿐만 아니라 OTT 콘텐츠나 SNS에서도 자살예방과 관련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고 매체가 다양해진 만큼, 공감대와 책임도 넓어지길 바란다. wongood@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