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장회의 개막..외교장관 “수동적 외교 벗어나야”
2024.04.22 12:08
수정 : 2024.04.22 14:2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세계 각국 대사·총영사·분관장 등 재외공관장들이 서울에 모였다. 22일부터 열리는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키 위해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들 앞에서 지금까지의 ‘수동적 외교’를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외교부는 이날부터 26일까지 ‘지정학적 전환기의 우리 외교 전략’을 주제로 진행되는 재외공관장회의를 시작했다. 재외공관장 181명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개회식에 참석했다. 개회사에 나선 조 장관은 윤석열 정부가 기치로 내건 글로벌중추국가 비전을 두고 “지정학적 숙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국력과 위상에 걸맞은 더 큰 역할과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그러면서 “수십년간 남북관계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지정학적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익숙했다”며 “그런 자세로 외교를 다루기엔 지정학적 위기가 너무 복합적이고 우리의 국력과 위상, 국제사회의 기대가 너무 커졌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국익을 수호하며 자유·평화·번영에 적극 기여하는 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치열한 고민과 토론, 결단과 책임이 따른다”며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적 전환기에 과거를 답습하는 외교는 설 자리가 없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발로 뛰는 외교로 시대 변화에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 장관은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대 열강 외교 방향도 제시했다.
먼저 한미관계에 대해 그는 “핵 기반 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한 ‘워싱턴 선언’에 따라 확장억제 실행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착실히 이행해 한미일 협력을 속도감 있게 제도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는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올해 8월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에 핵 작전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런 합의의 연장선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에선 ‘북한 핵무기 사용 가정 도상훈련(TTX)’ 계획을 확인했다.
한일관계에 관해선 조 장관은 “양국관계 개선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나가는 한편 민감한 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면서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도록 적극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8일 전화통화를 해 양국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정상과 외교당국 간에 격의 없는 소통을 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도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 등을 통해 독도 영유권과 과거사에 대한 허위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전날에는 기시다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키도 했다.
조 장관은 한중관계의 경우 내달 개최되 전망인 한일중 정상회의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중국과는 원칙 있는 외교 기조를 견지하는 가운데 경제·인문 교류 등 갈등이 적은 분야부터 성과를 축적해 상호 신뢰의 기반을 튼튼히 다질 것”이라며 “한일중 정상회의가 양국관계 발전을 추동토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한일중 정상회의는 내달 26일 즈음 서울 개최로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대면하면, 이를 계기로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도 타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북한과 군사협력을 맺으며 불편한 관계가 된 러시아에 대해선 조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기본적 제약 요소가 있지만 최대한 전략적으로 관리해나가고자 한다”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 진출 우리 기업과 교민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러 무기거래 저지 국제공조 강화를 강조했다.
러시아는 국제연합(UN·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임기연장안에 상임이사국으로서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유엔 대북제재 감시기구를 무력화시키는 행태로, 국제사회를 등지면서까지 북한의 숨통이 트이게 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비호가 최고조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침공도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있다.
조 장관은 올해부터 2년 간 맡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때로는 양자관계에 미칠 단기적 비용과 부담을 감내하며 원칙과 기준에 따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기여하고 있다”면서 최근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 권고 결의안에 찬성한 것을 두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안보리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표결은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팔레스타인 무정정파 하마스와 부딪히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최우방이라는 배경에서다. 한미관계에 주안점을 둔 현 정부가 그럼에도 찬성표를 던진 건 국제사회에 기여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에 힘을 실어주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손을 내민 것이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