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배임인가, 하이브 배신인가…법조계 평가는?
2024.04.27 06:30
수정 : 2024.10.18 14:00기사원문
[편집자주]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의 갈등이 고발로 이어지면서 법적 다툼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는데요. 오히려 민 대표는 "하이브에 배신당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경찰 수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핵심이 될 만한 쟁점들에 대해 법조계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번 들어봤습니다.
◇ 핵심은 경영권 탈취 시도인데 업무상 배임?
이번 사태의 핵심은 '경영권 분쟁'입니다. 민 대표가 외부 투자자 등을 동원해 어도어를 자신의 회사로 만들려 했다는 게 하이브 측의 주장입니다. 이런 행동은 하이브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 대표가 일종의 해사 행위를 한 것이고 이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논리입니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고의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려 했다는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가 필수요건입니다. 민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저는 직장인이고 월급 사장이다, 의도도 동기도 한 것도 없어서 배임이 될 수가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하이브가 경찰에 제출한 증거들을 토대로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시도가 명백했고 하이브가 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풋옵션 행사 엑시트…대박" 문자가 단순 사담?
하이브는 민 대표가 '탈(脫)하이브' 하려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물증도 확보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 대표는 경영진과 '글로벌 자금을 당겨와서 하이브랑 딜하자', '2025년 1월 2일에 풋옵션 행사 엑시트',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민 대표는 "경영권 찬탈을 기획하거나 의도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어도어 지분권자이자 대표이사인 민 대표가 소속 임직원들과 풋옵션 행사 시기 등을 계산하고 대화 나눈 부분을 단순 사담으로 보기엔 상당히 구체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재무적 투자자를 구함(민대표님+하이브에서 어도어 사오는 plan)'이란 대화도 포착됐습니다.
민 대표가 일정 부분 경영권을 쥐고 있어 이를 경영권 탈취 정황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결국 어도어 측에서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합니다.
검사 출신 최혜윤 변호사(법무법인 서연)는 "투자관련 전문 용어, 구체적 지분범위, 옵션 행사 시기, 특정 소송 명기, 구체적 플랜 등이 언급돼 있다"며 "단순히 민 대표가 자신의 지분을 처분하기 위한 사담으로 판단되기보다는 자신의 주식 관련 계약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자에게 '업무 지시'해 전문가에게 자문받아 그 답변을 회신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어도어 1대주주인 하이브의 지분율이 80%에 달하는 데다 모회사인 하이브로부터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그러나 하이브는 민 대표가 가진 지분율 18%로 경영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보고 실제로 이러한 정황을 포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업법무 전문 변호사들은 어도어가 비상장사인 만큼 이사회의 결의만 있으면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어도어 이사회가 민 대표 측근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율을 많게는 50% 이상씩 모아 지분구조 역전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어디까지나 단지 '정황'일 뿐 실제로 매각을 시도했거나 투자자들과 공모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업무상 배임까지는 가지 못할 거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양진하 변호사(법무법인 테헤란)는 "하이브는 민 대표와 지속해서 갈등을 이어오던 중 민 대표 측에서 내부고발이 들어오자 자신들과 각을 세우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의 항의로 간주했을 수 있다"며 "이를 두고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하기 위한 실행에 착수했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배임이라고 단정짓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양 변호사는 "다만 민 대표는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대표이사인 만큼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에 비해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불리하게 판단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진스 카피하지마" 민희진의 내부고발 정당했나
갈등의 시작은 민 대표의 내부고발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민 대표는 "문제의 본질은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copy·복제)"라고 주장합니다. 기자회견에서 뉴진스 홍보 등을 둘러싸고 하이브와 오래전부터 갈등이 잦았으며, 자신의 발언권과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하이브가 감사를 벌였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나옵니다. '뉴진스'는 하이브 귀속 자산이고 뉴진스 멤버들 대부분 하이브 산하 레이블 출신 연습생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다른 하이브 자회사 '빌리프랩'에서 제작한 걸그룹 '아일릿'이 설령 뉴진스 제작 방식을 일정 부분 카피했다고 해도 어도어 측에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산하 레이블이 고르게 잘되길 바라니 레이블 간 가수들의 데뷔 및 홍보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반면 어도어 입장에서는 과도한 침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어도어는 다른 레이블들이 하이브에 100% 흡수된 것과 다르게 일정 부분 하이브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한 기업법무 전문가는 "뉴진스 관련 저작물 창작 권리가 어도어에 있는지, 하이브에 있는지, 제3자에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면서 "설령 어도어에 저작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도어의 1대주주는 하이브가 있기 때문에 침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민 대표는 어도어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면서 "계약상 어디까지 민 대표의 프로듀싱 권한을 인정할지는 더 살펴봐야겠지만, 이를 강하게 지적했다고 모회사에 반기를 들고 경영권을 뺏어가려 했다고까지 보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모회사 입장에서는 한 그룹이 잘 됐으면 새로운 그룹을 제작했을 때 그 방식을 참고할 수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자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 장기적으로 자기 소속 그룹에 피해가 간다고 판단할 경우 대표로서 이를 문제제기하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