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이로운 좋은 정책은 철저한 사전·사후평가에서 나온다

      2024.04.28 17:00   수정 : 2024.04.28 22:5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좋은 정책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한다. 반면 나쁜 정책은 국민들을 정신적, 물질적 궁핍으로 내몬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좋은 정책만을 미리 선별, 시행함으로써 정부 정책 집행의 궁극적 목표인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은 없을까.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을 총괄했던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수석 출신의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PERI) 원장은 “정책 시행전 충실한 사전 평가와 시행후 철저한 사후 평가를 통해 보완하면서 정책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면 혈세도 아끼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안 원장은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정부 정책의 사전 및 사후평가의 중요성에 대해 이 같이 강조했다. 한 때 '정책의 달인'으로 불렸던 그가 정책이 국민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론의 하나로 ‘철저한 사전·사후 평가’ 체제 도입을 언급한 것이다.


안 원장은 합리적인 정부 정책의 수립 과정을 묻자 ‘수요파악→ 사전평가(사회적 실험)→ 재원소요 계산→ 구체화→ 재원조달 방안 마련→ 시행→ 사후평가’라는 설계도를 꺼내들었다.

특히 ‘사전평가’ ‘사후평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모든 정책의 시작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국민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 잘못됐다를 정부나 국회가 미리 파악을 해서 정책 수립 및 개선의 방향성이 일단 정해지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 지 사전에 평가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그동안 사전 평가 자체를 거의 안했고, 일단 해보고 이거 아니네 하면 또 바꿔보고 이런 과정 때문에 국민을 힘들게 한 부실 정책이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평가를 통해 정책의 기대효과를 미리 설계해 정책 집행의 오류를 최소화시키는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정책 시행 후 당초 기대했던 사전 평가 효과가 나타나는 지에 대해 사후 평가를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다시 기존 정책을 바꿔주는 선순환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전 평가’가 정책의 기본설계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사후 평가’ 역시 정책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충분조건’인 셈이다. 즉, 효율적인 사전 및 사후평가를 제대로 거친 정책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좋은 정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사후평가 절차는 뭐가 있을까. 안 원장은 국회의 결산제도와 국정감사를 꼽는다.

그는 “국회의 결산이 매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매번 비슷한 지적사항이 되풀이되곤 한다”며 “국정감사도 정책의 비효율성을 가려내기보단, 특정 기관의 비리 등을 파헤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받는데만 신경을 쓴다”고 일갈했다. 결산과 국감은 이미 시행된 각종 정부 정책과 예산집행의 비효율성을 걸러내 정책완성도를 높이고 혈세 낭비없는 새해예산안을 짜는 밑거름이 돼야 함에도 ‘수박 겉핥기식’, '한 건주의식' 진행으로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또 정부의 돈 씀씀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고 매년 새해 예산안을 짜면서 낭비 요소를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를 현 특별위가 아닌, ‘일반 상임위원회’로 둬야한다고 짚었다.

그는 “특별위로 두고 매년 수십명의 여야 의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일반 상임위와)겸직하게 하지말고, 나라살림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는 의원들로 일반 상임위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약 50명의 여야 의원들이 예결특위와 일반 상임위 1개를 겸직하게 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결산은커녕 짜임새 있는 새해 예산안을 짜기 어렵고 매년마다 반복되는 이른바 ‘쪽지예산’, ‘카톡예산’ 등 밀실 나눠먹기 합의 작태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21대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 속기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예결위원 발언 중 예산관련은 20~30%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안 원장은 “새해 국민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나라살림에 대한 논의는 당초 예결위원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라며 "처음에는 항상 예결산 관련 발언만 하자고 해놓고 실제는 엉뚱한 정치공세로 허송세월하다 막판에 시간에 쫓겨 밀실합의하는 패턴이 반복돼 결국 국민만 골병드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전·사후 평가 미비로 인한 대표적 혈세 낭비 정책으로 ‘저출생’분야를 꼽았다. 수백조원대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도 유례없는 저출생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안 원장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지난 5년간 저출생 예산은 24조1150억원에서 51조7000억원으로 2.14배나 증가하는 동안 출산율은 같은 기간 1.05명에서 0.78명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는 정책 대안으로, 'RCT'(Randomized Controlled Test·무작위대조시험)이라는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s) 실시를 제시했다. 주로 신약개발 효과 등 의료분야에 많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안 원장은 "과학적 사전평가를 위해 우리도 이제 RCT와 같은 사회적 실험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며 "RCT는 특정 정책 프로그램의 대상자들을 두개 그룹으로 나눠 하나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토록 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게 한다"고 소개했다. 이후 특정 정책 시행에 따라 참여자와 비참여자간의 행동 변화를 관측해 해당 정책이 시행됐을 때의 효과를 사전 평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어 "주요 선진국들은 RCT를 오래전부터 사회정책 프로그램 효과를 평가하는 데 활용해오고 있다"며 "우리도 저출생 정책에 대한 사전평가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수많은 저출생 대책의 시행착오를 만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최근 저출생대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이민관련 정책에도 RCT 과학적 사전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과거 정책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위해서라도 제대로된 사전·사후평가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민청 신설을 비롯해 비자 확대 등 정부가 추진 중인 대책 역시 철저한 사전평가를 통해 시행시 정책적 효과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한편 기존 대책들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재평가해 없앨 건 없애고, 조정할 건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통' 답게 국가채무의 적정관리를 위한 방만 경영 예방과 재정건전성 확보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안 원장에 의하면, 문재인정부 5년(2017~2021)간 나랏빚은 627조원에서 967조원으로 무려 340조원이나 늘었다. 역대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6%에서 47%가 됐는데 빚이 한 해 소득의 절반에 달하는 셈이다. 이전 두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이 각각 3.3%p·5.2%p 증가한 데 비해 무려 11%p가 늘었다.

그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 이전인 2019년 재정적자가 이미 GDP대비 2.8%에 달했는데 3%대에 달한 건 외환위기였던 1998년 4.6%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9년 3.6%를 제외하곤 2019년부터 이어진 적자가 유일하다"며 "이렇게 나라살림이 엉망이 된 건 아무리 코로나19 때문이었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 5년간 무려 9번, 137조원에 달하는 추경편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부채 관리와 방만한 경영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공기업의 경우 스스로 발생시킨 부채와 정부 사업을 대행하다 만들어낸 부채를 분리해 '구분 회계'로 관리하자는 제언도 내놨다.

그는 "정부 예산으로 해야될 사업을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사업으로 만들어 채권발행해 조달하도록 하니까 국가 부채로 안 잡히고 공기업 부채로 잡힌다"며 "공기업이 경영 평가받고 감사받으면 '이거 우리가 한 게 아니고 정부가 시켜서 한 거다'라며 빠져나가고, 중앙정부도 책임을 공기업에 전가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고강도 '규제혁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안 원장은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규제 프리존 특별법'이 있는 데 취지는 '모든 규제는 없는 거다. 꼭 필요한 규제가 있으면 정부나 해당 단체가 그 게 왜 필요한 건지를 밟혀서 규제를 만들어보라는 거'였는데 야당의 반대로 잘 안됐다"며 "여전히 지금도 규제항목을 나열하고 어떤 걸 풀겠다는 시스템인데 이러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규제 풀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윤석열 정부의 3대개혁(연금·노동·교육)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복잡한 개념의 3대 분야에 대해 국민들이 왜 개혁이 필요한 지부터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이해와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안 원장은 "(보험료 조정 등 사회적 합의없이)이렇게 가다간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다"며 "어느 순간 연금재정 고갈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 보험료를 한꺼번에 왕창 올리든지, 혈세로 우선 메꾸든지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같은 절박감속에 이제부터라도 정부, 국민 각계각층이 서로 양보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불가피하게 인상돼야 하는 보험료 분에 대해선 새로운 개인별 계정을 만들어 낸 만큼 받도록 하고, 그만큼 기존의 국민연금을 줄여가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방안에 대해선 "어떤 정책적 기대를 하는 지 타깃이 명확하지 않다"며 "코로나19 시기조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도 당초 겨냥했던 내수 진작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지적이 많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안 원장은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 회복을 위한 정부 역할과 관련, "우선 정치, 사회, 경제적인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뒤 △반(反)기업정서 완화 △중소·중견기업 지원 강화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 강화 등을 주문했다.

특히 불확실성에 민감한 기업들의 경우,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에 효율적으로 대비하려면 여러 공공분야의 정보를 최대한 빨리 습득하고 거기에 중·장기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 원장이 주도하는 PERI는 민간연구기관으로, 지난 2022년 5월 출범했으며 국회·정부·공공기관 등에 흩어져 있는 각종 정책정보를 국민·정부·기업·각종 단체 등에게 맞춤형 컨설팅과 함께 제공하는 AI(인공지능)에 기반한 원스톱 정책 통합플랫폼을 운영중에 있다.


안종범 원장 주요 이력

▲대구 출생 ▲만 64세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한국재정학회 회장▲제19대 국회의원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재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개혁소위원회 간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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