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언제든 오만을 심판한다
2024.04.29 20:06
수정 : 2024.04.29 20:06기사원문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로 주저앉았다.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용산의 비세를 알아챘음일까. 비례대표 12석인 조국혁신당의 기세가 등등하다. 조국 대표는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형사 피고인이다. 그런 그가 윤 대통령에게 조롱조로 '김건희 특검' 수용과 음주 자제 등 10개 요구사항을 내놨다.
용산의 옹색한 입지는 '총선 쓰나미'에 휩쓸린 대가다. 여당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18석을 합쳐 고작 108석을 건졌다. 반면 조국혁신당과 이준석의 개혁신당 등을 망라한 '반윤' 의석은 무려 192석이다. 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만으로도 단독 과반(175석)을 넘어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의 '사법 리스크'에다 양문석·김준혁 후보 등의 온갖 추문과 도덕성 논란에도 범야권의 압승이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 후 윤 대통령을 만난 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저격했다. 그가 마이크를 독점한 캠페인이 선거를 망쳤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곁가지 지적일 뿐 '정권 심판' 태풍은 대통령이 불렀다고 봐야 한다. 이종섭 출국, 황상무 실언, 의사 파업 담화 등 고비마다 민심의 역린을 건드리면서다. 특히 김 여사의 디올백 문제와 관련한 대응이 그랬다. '몰카 공작' 차원에서 접근한 목사를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웠다"는, 사과 빠진 해명은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에 대한 중도층의 회의감만 키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겨우 0.73%p 득표율 차로 이재명을 앞섰다. 윤석열이 좋아서라기보다 이재명이 되면 나라가 결딴날 것으로 보거나, 문재인 정권에 질린 중도층이 결집한 결과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찍었던 유권자의 10%가량이 이번 총선에선 야당 후보를 찍었다는 최근 여론조사를 보라. 지난 2년간 국정의 큰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닐지라도 윤 대통령이 '불통'과 '오만' 이미지를 쌓아왔다는 방증이다.
압승한 야권은 이제 입법·행정·사법 전 분야에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양곡관리법·민주유공자법안 등을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제22대 국회에서 법사위장 등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고 한다. 한 당선자는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방탄'을 넘어 '사법부 길들이기'를 예고한 셈이다.
물론 이런 폭주는 야당의 자충수가 될 게 뻔하다. 민주당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은 얼마 전 총선 압승을 근거로 "협치란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여야 간 총선 득표율 차는 5.4%p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야당이 지역구 71석을 더 가져간 건 소선거구제의 맹점 탓이다. 다시 야권의 오만이 하늘을 찔러 국민 중 2.8%p만 등을 돌려도 다음 선거는 정반대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 참패는 용산의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남은 3년 임기 내내 국정혼선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불행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여당 안으로는 안철수, 나경원, 유승민 등 그간 경원시했던 인사들과 겸허히 소통해 허물어진 대선연합을 복원하고, 당 밖으로는 야권과의 협치가 불가피할 것이다.
내각과 참모진에 유능하고도 정의로운 인재를 고르는 일은 더 중요하다. 일찍이 냉철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성난 민중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존경받는 출중한 인물이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공정'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웠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 내외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인사를 발탁해 그 첫걸음을 뗄 때다.
kby777@fnnews.com